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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24:1-9

 유대인과 산헤드린이 함께 작당하여 바울을 암살할 계획을 세웠던 것을 지난주에 함께 읽었습니다. 야간에 천부장이 이 첩보를 들었고 그대로 두면 아침에 살인 테러가 일어날 것입니다. 천부장이 야간에 대대적인 군사를 동원하여 바울을 총독 벨릭스에게로 이송하게 됩니다.

 

바울은 원래 핏줄은 유대인이지만 다소라고 하는 로마령의 대도시에서 시민권자로 태어났습니다. 바울은 헬라 학문과 히브리 율법을 다 공부했고 젊어서부터 로마 세계와 유대 세계에서 이름이 알려졌던 학자였습니다. 예수를 만나기 전까지의 바울의 직업은 지금 바울을 죽이려고 하는 그 산헤드린이라는 유대 최고재판소의 의원 70명중의 한 명이었습니다. 출세한 젊은이였지요. 바울은 한 때 출세했던 그 영광의 결과에 집착하는 삶을 살지는 않았습니다. 자신의 출신인 산헤드린 공회에게 암살의 위협을 받고 있는 신세가 되어 감옥을 전전하면서 살해 위협에 도망다녀야 하는 것은 바울이 사회적 실수를 범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예수의 사랑을 만났기 때문이었습니다. 바울이 예수님을 만난 사건은 바울 자신을 만난 사건이기도 합니다. 자신만만, 의기양양하던 엘리트 사울은 인생의 비참함과 연약함과 자기 안에 있는 깊은 죄와 대면하고 바울이 됩니다. 구원이라는 것은 한 인간이 반드시 그 바닥을 칠 때만 주어지는 하나님의 자비입니다. 회심이란 인생에서 추구해야하는 가치가 바뀌는 것입니다. 신앙의 고백의 힘은 말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율법적 준수를 체크하여 알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 사람의 삶이 향하고 있는 방향을 보면 신앙은 틀림없이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이것은 역순으로는 만족시킵니다. 인생의 추구하는 가치가 하나님 앞으로 돌아선 사람은 하나님의 규칙을 지키고 살 것이며 입과 행동으로 신앙을 고백할 것입니다. 인생이 추구하는 가치가 그 신앙을 증명합니다.

 

바울의 인생의 가치와 방향은 180도로 바뀌지만 하나님은 바울의 재능과 실력과 경험과 그 바울이 가지고 있던 시민권까지도 다 사용하셔서 선교하십니다. 바울은 당시 어떤 것보다 강력하게 보호받을 수 있는 로마시민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시민권자로서 법률과 제도의 보호를 받을 수 있었고 그래서 불법적으로 사람을 죽이려고 하는 폭력적 종교의 위협으로부터 안전한 곳으로 옮겨질 수 있었습니다. 종교의 이름이 폭력과 야만의 행사를 요구할 때 우리는 그것이 신앙이 아님을 말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에 저항해야 합니다. 종교적 신념과 집단이기적 이익을 지키기 위해서, 또는 경제적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서, 국가주의적 민족주의적 자긍심을 위해서 거짓과 차별과 폭력과 살인이라는 불법을 동원하려고 할 때 우리는 그 안에는 이미 내가 지켜야 할 믿음의 가치가 없다는 것을 선언해야 합니다. 그것은 정치적으로 동원된 야만이지 그리스도를 따르는 신앙이 아닙니다.

 

죽이지 못해 분에 차서 항의하는 유대인들에게 천부장은 벨릭스에게 가서 직접 소송하라고 보내버립니다. 유대인들은 더둘로라는 변사를 데리고 당장 벨릭스에 가서 바울을 고소하지요. 오늘 설교 본문은 그 고소 내용입니다. -24:2 바울을 부르매 더둘로가 송사하여 가로되 24:3 벨릭스 각하여 우리가 당신을 힘입어 태평을 누리고 또 이 민족이 당신의 선견을 인하여 여러 가지로 개량된 것을 우리가 어느 모양으로나 어느 곳에서나 감사 무지하옵나이다 24:4 당신을 더 괴롭게 아니하려 하여 우리가 대강 여짜옵나니 관용하여 들으시기를 원하나이다- 누가가 이 의미없이 장황한 인사를 꼼꼼하게 기록한 이유는 저는 더둘로가 얼마나 권력에 아첨하는 인간이며 벨릭스가 얼마나 악한 총독인지를 반어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벨릭스는 결코 선한 정치인이 아니었습니다.  벨릭스는 52~66년 사이에 유대의 총독이었는데 66년부터 유대인들의 저항이 시작되는데 그것이 유대독립전쟁입니다. 4년만인 A.D70년에 로마의 티투스에 의해 예루살렘이 무너지고 예루살렘 성전이 완전히 파괴됩니다. 멸망입니다. 110만명이 죽고 살아남은 유대인은 전원 로마 제국의 전역으로 흩어집니다. 2000년을 그렇게 살았습니다. 유대라는 나라는 공중에서 분해되어 버립니다. 구약에서는 바벨론 제국에, 신약에서는 로마 제국이라는 철퇴를 맞아 망했던 나라 유대, 성경은 바벨론제국과 로마제국의 폭력의 이유를 유대의 타락과 불신앙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이 타락하여서 하나님이 제국의 채찍으로 징계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그 타락한 권력과 종교가 망해가고 있는 시대와 새로운 희망이 해산의 고통 속에서 태어나고 있는 시대가 클로즈업 된 역사를 읽고 있는 것입니다. 벨릭스는 그 원인 제공자 중의 한 명입니다.

 

더둘로는 이런 벨릭스에 대해 듣기에 거북할 정도의 아부의 인사로 고소를 시작합니다. 그리고 ‘염병’, ‘소요케하는 자’, ‘나사렛 이단의 괴수’, ‘성전을 더럽게 하는 자’라는 이유로 바울을 고소합니다. ‘소요케하는 자’, 신약의 시대상을 볼 수 있는 절대적 자료인 역사가 요세푸스의 「유대전쟁사」에도 이 벨릭스 유대총독에 관한 기록이 있습니다. 그의 치세에는 특별히 소요 사건에 대해서는 매우 엄격하게 다루었습니다. 소요 사건이 일어나면 주동자 뿐만 아니라 그 추종자들까지도 가장 잔인한 십자가 형벌에 처했다고 합니다. 몇 년 뒤 유대가 멸망할 정도의 반란이 일어났으니 그 시대에 총독이 소요에 관해서 얼마나 민감했을지는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더둘로는 벨릭스가 로마제국의 지배 논리 ‘팍스 로마나(Pax Romana)’, 즉 로마의 평화를 반대하는 것에는 용서함없이 무자비한 로마의 폭력을 사용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바울을 고소하면서 이 소요죄에 악센트를 두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 하나의 고소의 이유는 ‘나사렛 이단의 괴수’라는 것입니다. 예수를 신봉하는 신흥종교의 위협이라는 것입니다. 나사렛 이단이라는 것과 그 괴수라는 것은 분명 예수 그리스도와 바울에게 있어서 모욕적인 말이지만 당시 정통 유대교인의 입장에서는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라고 인정합니다. 다만 그것이 유대 율법이 아닌 로마법에 기소할 수 있는 일인지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로마제국은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유대교도 식민지 종교로 인정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유대교가 예수교를 이단이라고 처벌해달라고 하는 것은 사실상 자신들의 신앙의 협소한 자유마저도 스스로 위협하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성전을 더렵혔다는 것은 사실관계를 확인조차 하지 않은 허위이기 때문에 명백한 무고죄이며 혐의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로마법에 위촉될 일이 아닙니다. 게다가 성전을 더렵혔다는 말은 바울이 이방인을 데리고 성전에 들어갔다는 것을 말하는데 유대인에게 있어서 이방인이라는 것은‘ 비유대인’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사건을 판단할 재판관인 총독도 유대인에게는 이방인입니다. 고소의 이유라고 하기에는 어리석기 그지 없습니다. 더둘로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지는 알겠으나 법정 언어라고 했을 때 사실관계와 법률적인 논리가 없습니다. 총독에게 대한 화려한 아부의 말부터 그 신뢰성을 찾을 수가 없었고 무리하게 왜곡된 고소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더둘로가 벨릭스에 대한 아첨의 말을 끝내자 마자 제일 먼저 튀어 나온 말은 전혀 법적이지 않았습니다. 무엇이었습니까. ‘염병’입니다. 일본어 성경에는 역병이고, 한국어 성경 개정개역에는 전염병, 그리고 우리가 쓰고 있는 한글개역은 좀 더 옛날 번역이라 ‘염병’이라고 번역했습니다. 한국어 염병은 욕으로 사용되는 말이기도 해서 우리가 듣기에는 더 자극적인 표현입니다. 원래 한국어에서 염병이란 장티푸스를 말합니다. 치명적인 전염병이었지요. 욕과 저주에 쓰이는 만큼 전염병이라는 것은 강력하고 무서운 병이었습니다. 법률상 구체적 사실의 적시를 하면 명예훼손이 되고 추상적 가치판단을 인격에게 하면 모욕죄가 됩니다. 그 당시나 지금이나 인격에 대해서 구체적 혐의 없이 인격에 대해서 염병이라고 말하는 것은 대단한 모욕입니다.

 

그러나 불쾌한 말인 것은 분명하지만 더둘로가 염병이라고 한 것은 ‘전염성’에 대해서 말한 것이지요. 그러니 더둘로가 이것에 대해서 만큼은 정확하게 본질을 꿰뚫고 있었던 것입니다. 문제는 전염입니다. 바울은 전염성 바이러스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지요. 바울이 가지고 있는 복음이 전염성을 가지고 있다는 근거는 무엇입니까? -마28: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마28: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선교라는 전염성 바이러스의 근본원인은 마28:20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입니다.

 

인류최악의 전염병은 14세기 유럽에 번진 흑사병이었습니다. 유럽의 총 인구의 4분의 1인 2500만명이 죽었다고 하고 어떤 이는 유라시아까지 포함하여 1억명이 죽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남유럽에서 시작한 흑사병이 북유럽까지 퍼지는데 약 3년이라는 시간이 걸렸습니다. 하루 평균 3~5km씩 확산된 것입니다. 무섭지만 사실 속도는 상당히 느렸습니다. 지금은 몇 천 배 빠른 속도로 전염병이 퍼집니다. 전염병이 비행기를 타고 하루 만에 전세계를 날아다닙니다. 그러니 전염되는 속도는 무엇에 의해 결정됩니까? 사람의 이동의 속도입니다. 페스트가 쥐에서 시작되었다고 하더라도 페스트를 전염시키는 것은 사람이지요. 사람이 다니는 곳에 바이러스가 전염됩니다. 이번에 인플루엔자가 유행했는데 양성인 경우에도 열이 나지 않는 경우가 있답니다. 그래서 증상을 느끼지 못하는 환자들이 돌아다니면서 감염이 빠르게 확산됐습니다. 앓아 누우면 많이 전염되지 않을 텐데 감염자가 일어나 돌아다니니까 더 많이 전염됩니다. 사람이 가는 곳에 바이러스가 전염됩니다.

 

더둘로의 염병이라는 모욕은 불쾌하지만 예수가 바울에게 준 복음의 전염성은 맞는 말입니다. 복음은 반드시 사람이 이동하면서 옮기는 것입니다. 이 지구상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지중해를 건너고 우랄산맥을 넘고 대서양과 태평양을 건너서 복음을 들고 이동했습니까? 사람이 복음을 들고 돌아다녀야 죄사함의 바이러스가 전염됩니다. 사람이 복음을 들고 돌아다녀야 구원과 사랑의 바이러스가 전염됩니다. 교회가 박해를 받기도 했고 성도가 타락하기도 했습니다. 복음은 잠시 정체해 있기도 하고 한 시대와 한 지역에서 잠시 물러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세상 끝날까지 전염성을 가지고 믿는 자 안에서 살아납니다.

 

원래 전염병은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잠복해 있다가 활동할 수 있는 시기에 다시 부활합니다. 우리의 열정은 식고 믿음이 멈추면 복음이 잠복해 있다가 믿음이 일어나면 복음 선교는 다시 일어납니다. 복음은 결코 지치지 않습니다. 복음은 절대 막히지 않습니다.-마28:20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세상 끝날까지 선교의 주 예수가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는 교회와 항상 함께 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기대가 아니고 약속입니다. 바울의 힘과 2000년을 선교한 교회의 힘은 오직 그것이었습니다. 믿음의 바이러스, 구원의 바이러스, 소망의 바이러스 옮기는 공동체이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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