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 18장 10~20
18:10 삼가 이 소자 중에 하나도 업신여기지 말라 너희에게 말하노니 저희 천사들이 하늘에서 하늘에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뵈옵느니라
18:11 (없 음)
18:12 너희 생각에는 어떻겠느뇨 만일 어떤 사람이 양 일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길을 잃었으면 그 아흔 아홉 마리를 산에 두고 가서 길 잃은 양을 찾지 않겠느냐
18:13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찾으면 길을 잃지 아니한 아흔 아홉 마리보다 이것을 더 기뻐하리라
18:14 이와 같이 이 소자 중에 하나라도 잃어지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니라
18:15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가서 너와 그 사람과만 상대하여 권고하라 만일 들으면 네가 네 형제를 얻은 것이요
18:16 만일 듣지 않거든 한 두 사람을 데리고 가서 두 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증참케 하라
18:17 만일 그들의 말도 듣지 않거든 교회에 말하고 교회의 말도 듣지 않거든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라
18:1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18:19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에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저희를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18:20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어제 본문의 「천국에서 누가 큰 자인가」라를 질문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은 「약자에 대한 배려」였습니다. 「삼가 이 소자 중에 하나도 업신여기지 말라 너희에게 말하노니 저희 천사들이 하늘에서 하늘에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뵈옵느니라 10」 가 문맥상의 결론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이것을 부연하시기 위해서 「잃어버린 양의 비유」를 시작하십니다. 백 마리 양을 가진 목자가 양 한 마리를 잃었을 때 목자는 아흔 아홉마리를 산에 두고 잃어버린 양을 찾으러 간다는 것입니다. 아흔아홉 마리가 아무리 많더라고 목자는 잃어버린 한 마리 양에 마음을 빼앗길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의무나 책임의 문제에 앞서 마음의 문제입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삯군을 부정적으로 묘사하는 것입니다. 삯군이란 삯을 받고 일하는 사람이니 나쁜 사람이 아닙니다. 문제는 돈을 받은 만큼 그 시간 동안에 일은 하지만 그것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마음이 없다는 것입니다.
혹자는 아흔아홉 마리 양의 안전을 내버려 두고 한 마리의 양을 찾으러 가는 것이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것인가라고 질문하기도 하지만, 이 이야기는 잃어버린 양을 찾는 방법론에 대한 것이 아니라 목자의 마음을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말에 부모의 자식 사랑에 빗대어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 비유가 13절에서 끝나는데 14절부터 이 비유를 통해서 예수님이 하시고자 하는 싶은 말씀이 이어집니다. 「이와 같이 이 소자 중에 하나라도 잃어지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니라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가서 너와 그 사람과만 상대하여 권고하라… 14,15」
「이와 같이…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양을 잃어버린 목자가 양을 찾으러 나가야 하는 것처럼 범죄한 형제를 믿음 안에서 회복시키라는 것입니다.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그린 화가들은 귀여운 아기 양을 그렸지만, 예수님이 말씀하신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이란 관계의 문제나 도덕의 문제나 믿음의 문제의 이유로 공동체를 떠난 사람입니다.
앞서 한 마리 양을 찾으러 나간다는 것이 양을 찾는 방법론이 아니라 목자의 마음에 대한 것이라고 했습니다만, 방법론은 15절~17절에서 나옵니다.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가서 너와 그 사람과만 상대하여 권고하라 만일 들으면 네가 네 형제를 얻은 것이요 만일 듣지 않거든 한 두 사람을 데리고 가서 두 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증참케 하라 만일 그들의 말도 듣지 않거든 교회에 말하고 교회의 말도 듣지 않거든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라」
반복하여 권면하고 진정성을 확인하는 과정을 거치는 것은 공동체에게나 본인에게나 중요한 것입니다. 아흔아홉 마리가 중요하듯이 공동체 전체는 중요하니까요. 그러나 여기서 더 중요하게 읽어야 하는 것은 이러한 회복을 본인 스스로 주체적으로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잃어버린 양은 알아서 찾아오지 않습니다. 이웃이 관심을 가지고 찾아가고 공동체가 협력하여 중보하며 설득하고 교회가 하나님의 권위를 위임받아 권면하고 경고해야만 되는 일입니다.
예수님의 방법론은 18절 이후에도 이어집니다.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셨습니다. 내가 용서하고 내가 회복시켜주면 하늘에서도 용서를 받고 회복이 됩니다. 그러나 내가 방치하고 포기하면 그들은 땅에서도 묶여있고 하늘에서도 묶여 있을 것입니다. 「너희가 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 요20:23」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약자 보호는 거창한 복지 사업이 아니고 공동체 밖으로 나가 사각지대에 놓여버린 사람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없으면 공동체는 오히려 평화로울지 모르겠지만 그들을 찾아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양들이 그러하듯이 공동체는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함께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본문 마지막에서 이것을 이룰 수 있는 가장 완전한 방법을 제시해 주십니다.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에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저희를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18~20」
여기서 「무엇이든지 구하면」 는 알라딘의 램프의 소원이 아니라 어떤 사람의 어떤 큰 죄이든지 중보와 사랑의 기도가 있다면 이라는 뜻입니다. 「합심하다→구하다→이루게 하시다→그들 중에 있다」기도하고 찾아가고 권면하면 이 일이 이루집니다. 이루게 하시고 그들 중에 있다 하셨으니 하나님이 그 공동체 안에 임재하십니다.
교회 다니던 사람만이 회복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떠난 모든 사람은 회복되어야 하지 않습니까. 새롭게 이동하게 될 목장에 잃어버린 양들이 많이 돌아오면 좋겠습니다. 이전을 위해 공사해야 할 것이 많은데 돌아올 양들을 맞이하기 위한 중보의 마음으로 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찬양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