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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가면 내 나라가 있고 내 집이 있습니다. 그래서 기쁘게 한국에 돌아가보지만 이제 20년 전, 30년 전의 우리 집은 아니더군요. 이제 우리 집은 아내와 아이들이 있는 동경의 집입니다. 그래서 언제부터인가 한국에 가도 여전히 나그네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좀 서러웠습니다. 내 나라에 가면 내 집이 없고 내 집으로 돌아오면 내 나라가 없는 것이지요. 나그네이고 이방인입니다. 외국에서 산다는 것, 이방인으로 산다는 것, 나그네로 산다는 것은 항상 그런 비애를 가지고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사실 인생이라는 것은 누구에게나 예외없이 그리고 철저하게 나그네 길입니다. 삶이 나그네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순간, 인생은 교만해지고 어리석어지고 실수를 범하고 인생의 방향을 잃게 됩니다. 우리의 삶이 나그네라는 것과 그 나그네 길에 끝이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삶이 나그네 길이라는 것을 인정해야만 탐욕과 어리석음과 싸우고 신앙이라는 진정한 위로를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여기 모인 분들은 한국인이면서 다양한 사정으로 여기 일본에 와 계신 분들입니다. 여기서 영주하고 있는 분도 계시고 주재하고 있는 분도 계시고 잠시 나그네가 되어 여행을 온 학생들도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예배도 나그네로 떠돌아 다니며 드리고 있습니다. 오늘은 에다가와 사랑의 교회 예배당이 아니고 이렇게 나와서 예배를 드립니다. 우리의 예배당에 다 들어갈 수 없어서 두 개의 예배로 나누어서 드리기 때문입니다. 교회에서는 일본어로 예배드리고 있고, 여기서는 제가 한국어로 설교합니다.

선교는 조직과 돈이 진전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건물때문에 망하는 교회는 있지만 건물이 없어서 망하는 교회는 없습니다. 성경적으로 보나 역사적으로 보나 좌우의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다가 튕겨져 나가고 또는 파열되어 파편이 튀어나가는 것을 통해 복음은 확산되고 선교는 확장되었습니다. 오늘이 우리에게 그런 선교의 확장의 계기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나그네 이야기 하나 더하겠습니다. 오늘이 2019년 2월 24입니다. 정확히 100년전 1919년 2월에는 한국 역사에 아주 중요한 일이 있었습니다. 2.8독립선언입니다. 그 사건은 여기 동경에서 일어난 사건입니다. 2.8독립선언이 있은 후 100년이 지난 2019년 2월에 다시 여기 모이신 나그네 여러분들을 환영합니다.

오늘 저의 여권을 가지고 왔습니다. 여권 앞장에 있는 문구를 읽어보겠습니다. [대한민국 국민인 이 여권소지인이 아무 지장 없이 통행할 수 있도록 하여 주시고 필요한 모든 편의 및 보호를 베풀어 주실 것을 관계자 여러분께 요청합니다. 대한민국 외교통상부 장관] 이 행정상의 문구가 그다지 감동적이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2.8독립선언을 기억하고 기념하는 우리에게 대한민국의 푸른색 여권을 들고 여기 살고 있고 또 동경을 방문하고 있다는 것은 감격적인 것입니다.

1919년 2월 8일의 동경은 드물게도 눈으로 뒤덮여 있었습니다. 나라 잃은 재일조선 유학생 600여 명이 재일본한국 YMCA에 모였습니다. 거기서 그 어린 학생들이 조선은 독립국인 것과 조선인은 자주국민임을 선언하고 일본 정부와 의회에 보내고 대사관을 통해서 전세계에 공포하고 발신했던 사건이 2.8독립선언입니다. 동경의 유학생들에 의해서 시작된 독립선언은 그 불씨가 한국으로 옮겨가서 독립만세운동인 3.1만세운동이 일어납니다.

그 시대의 이야기를 좀 더 해볼까요? 우리가 예배드리고 있는 지금 이 지역은 3.1운동이 일어났던 1919년에 바다도 아니고 육지도 아니었습니다. 한참 매립이 진행되고 있던 간척지였습니다. 1919년 일본에 있던 한국 유학생은 조선의 독립을 선언했던 이유로 검거되었고, 3월의 봄에 태극기를 흔들었던 어린 여학생들의 치마저고리가 피로 물들어 갈 때 일본은 근대화를 이룬 후 간척과 침략으로 영토를 넓히고 있었습니다. 제국의 힘을 키워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1905년에 을사늑약, 한일강제병합은 1910년입니다. 그러니 1919년은 이미 15년간의 지배를 받은 이후입니다. 식민지 조선에서 먹고 살 것이 없어서 사람들은 지배자의 나라 동경으로 일을 하러 왔습니다. 집 떠나 동경에서 일하는 나그네였습니다. 그들은 동경의 바다를 매립하고 동경의 지하철과 전철 바닥에 돌을 깔았습니다. 여기 동경에도 한국에서 온 노동자 나그네들은 참 많았습니다.

그들이 일하고 있던 1923년 9월 1일의 동경에는 또 하나의 역사적인 사건이 일어납니다. 매립공사가 완성될 즈음에 지진이 일어났습니다. 관동대지진입니다. 누군가가 악의적으로 조선인들이 우물에 독을 풀었다고 헛소문을 냅니다. 조센징오 코로세!(조선인을 죽여라) 그렇게 흉흉한 민심을 수습하게 위해 조선인은 희생됩니다. 한국인이 잘 안되는 일본어 발음이 있습니다. 일본인이 들으면 금방 한국인인 것을 알 수 있는 발음입니다.「十五円五十銭」(고주엔교주센) 이것을 시켜보고 발음이 이상하면 죽였습니다. 남의 나라 와서 일하던 불쌍한 조선인 노동자들은 수없이 학살을 당했습니다. 이쪽 동경의 동부 스미다가와에 조선인 노동자들의 시체가 쌓였습니다.

30년대에 들어서 1940년 동경 올림픽 개최가 결정되었습니다. 결국 중일전쟁의 악화로 무산되지만 동경은 올림픽을 준비합니다. 도시 정화 사업으로 긴자와 스미다가와 동부에 있는 지저분한 것을 청소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이 보기에 가장 더러운 것은 다름아닌 조선인이었습니다. 그래서 조선인을 모아 쓰레기 하치장으로 강제 이주를 시켰는데 그곳이 우리 교회가 있는 에다가와입니다. 그래서 에다가와 입구에 조선학교가 있는 것입니다.

지진으로 죽고, 일하다가 죽고, 맞아서 죽고, 쓰레기 더미에서 병들어 죽었습니다. 살아남은 자는 평생 차별을 받고 살았습니다. 우리도 왜놈이라고 안하지만 교포들은 일본에서 태어났어도 왜놈이라고 하더군요. 우리는 그런 슬픈 역사가 매립된 매립지 위에 지금 서있습니다.

저는 민족주의자는 아닙니다. 반일 정신을 더 자극하기 위해 이 말을 하는 것도 아닙니다. 저는 민족보다 하나님의 백성, 천국의 시민이 더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복음주의자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내 부모고 형제 자매라고 했습니다. 선을 행하고 평화를 추구하는 사람이 내 부모고 내 형제고 내 민족입니다.

저는 국가주의자는 더더욱 아닙니다. 국가보다 개인의 존엄이 더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민주주의자입니다. 개인의 존엄의 근거는 하나님이 독생자를 죽이기까지 죄 많은 인간을 사랑하시고 존귀하게 여기시기 때문입니다. 내가 소중하지 않은데 어찌 남을 사랑하겠습니까? 진정한 피해자는 한국인과 그리고 일본인이며 진정한 가해자는 미움을 만들고 서로 싸우게 하는 권력자들입니다. 얼마전 돌아가신 위안부 할머니도 “우리는 일본 사람과 싸우는 것이 아니다”라고 하셨지요. 그 말씀이 맞습니다.

왜 3.1운동보다 2.8선언이 먼저 일어났을까요? 당시 한국의 상황보다 일본에 유학하던 지성의 밀도가 높았기 때문이기도 하겠지요. 그러나 저는 나그네에서 그 이유를 찾습니다. 여행을 하면 자신을 객관적으로 들어다 볼 기회가 생깁니다. 안 에서보다 밖에서 더 잘 보입니다. 나그네이기 때문에 그게 크게 보이는 것입니다. 동경에서 바라보는 조국 조선은 더 가여웠을 것입니다. 나그네가 시대를 선도한 것입니다.

그리고 100년이 지났습니다. 여전히 민족의 자부심, 국가의 이익 앞에서 양심을 마비시켜버리는 일본의 파렴치, 그리고 증오의 감정을 필요이상으로 자극하는 한국의 피해의식은 서로 대화의 접점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민족과 국가 안에서 역사를 보지 말고 역사 안에서 민족과 국가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일본에 대해서도 북한에 대해서도 대립과 갈등의 대상으로 보지 말고 평화로 가는 과정으로 보아야 합니다. 내 나라 내 민족이 아니고 인류의 보편적 양심과 평화가 내 것이 되어야 합니다. 내 교회, 우리 교회가 아니고 하나님이 이 시대에 요구하시는 교회가 무엇인지를 읽어내야 합니다.

2.8 선언과 3.1운동이 일어난 지 백 년이 지났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나그네가 되어 100년전과 같이 여기에 모여 있습니다. 100년전 학생들에게 독립과 평화를 위한 역사의 사명이 있었듯이 우리에게도 독립과 평화를 선도해야할 시대적 사명이 있습니다. 우리도 역사의 한 조각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오늘 설교 제목을 ‘백 년의 나그네길’ 이라고 정했습니다. 백 년의 나그네길을 이어받은 우리는 여기서 다시 정치적이며 경제적이며 문화적이며 또한 신앙적인 자립과 독립을 선언하여 종속된 것에서부터 해방하고 진리로 자유하며 또 한번 이웃과의 평화를 다짐해야 합니다.

기도
침략과 억압의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게 하소서.
양심이 무디어져서 이웃의 고통을 모르는 자에게 회개의 은혜를 주시고,
피해의식에 갇혀 증오와 미움이 이어지지 않게 하여주소서.
불의에 대해서 저항하게 하시고 평화에 대해 담대하고 용기있게 하소서.
선에는 지혜롭고 악에는 미련하라 하셨습니다. 
믿음은 평화와 용서를 이루어내고 이 자리에서 다시 평화를 다짐합니다.
이 땅에도 용서와 사랑의 복음이 전해지고 번져가게 하소서.
수고하고 고생하는 모든 육체가 예수를 믿어 구원 얻는 믿음을 주시고 본향을 사모하는 평강의 은혜를 주시옵소서.
오늘 나그네의 땅에서 예배드리는 여기 모인 나그네들을 위로하시고 바람 부는 그 길 위에서도 진리가 우리를 자유케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