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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篇 32:3,5 私が黙っていたとき 私の骨は疲れきり私は一日中うめきました。私は自分の罪をあなたに知らせ 自分の咎を隠しませんでした。私は言いました。私の背きを主に告白しよう」と。すると あなたは私の罪のとがめを 赦してくださいました。

春を促す雨がそぼ降ってました。もうすぐでさわやかな春の天気がやってくるでしょう。私は最近、春を迎えるということでよく散歩に出かけています。歩いてみると梅の花はたくさん咲いていました。もうすぐ桜も咲き始めるでしょう。今年、東京は3月21日に開花で、29日に満開だそうです。花が咲く美しい季節ですが、私は一週間ずっと苦しかったです。泣いていました。なぜなら昨年から花粉症が始まったからです。私は日本に来て20年目になります。今まではよく耐えたですが、昨年から花粉症が症状が始まりました。花粉が鼻に入るとくしゃみを出たりしますね。一度たら連続で何度も出てきます。つらいです。

くしゃみが出てくるというのは、体の中に入ってきた不純な異物を押し出すために体が動いているからでしょう。鼻からも同じ理由で、鼻水が流れます。鼻に入ってきた花粉を出すために鼻は鼻水を流して洗います。くしゃみをしたり、ティッシュで鼻水をかんだりした後は”ああ苦しい”とか ”大変だ”とか言いますが、実はくしゃみをしたり、鼻水をかんだりしたその瞬間はすっきりします。汚れたものを吐き出し、引き出したからです。最近、目も非常にがゆいのですが、目の中に何かが入ると、目は自らの涙を出して、それを洗い流します。これも浄化のための体の活動です。生きていることの証拠ですね。

涙というのは、目を洗うために流れることもありますが、心を洗うために流れることもあります。 悲しくなったら泣きます。泣いた分、その悲しみから、喪失感から、悔しい気持ちから少しは回復します。私の父がなくなったとき、母は枕元で泣いていました。何人かの介護者が母親を慰めながら、ベッドから離して”お父さんは天国に行ったから、もう泣かないで”と言いながら母を慰めていました。私はその介護者を退けて、母親が枕元でもっと泣けるようにしました。天国には父が行ったものであり、母はこの地で夫を失ったわけです。死者に対する生き残った者の当然な感情は悲しみです。母はもっと泣かなければならなかったのです。 心と体の状態が素直に涙というもので出てくることです。泣かないと悲しみは詰まってしまうかもしれません。

涙を流すように鼻水を解放ネドゥトイくしゃみをするように心の汚染されたことを吐き出した後、それが私たちの魂のカタルシスことでしょう。また、信仰が生きているという証拠です。カタルシスの原型が「カタロス」という形容詞です。イエス様が教え山上の垂訓、マタイ5章8節には、形容詞がなりました。「心の清い者は幸いである。私たちは神を見るからです。」の「清潔」が「カタロス」です。心がきれいになると、神を見るとしました。「見る」は目で見るの意味ではなく、体験するという意味です。桜の花が咲きまで2週間程度残っているようだ。トソルと涙は悔い改めとしましょう。そのカタルシスが過ぎ去って、そしてこの春の雨にも過ぎ去った後桜が必要頃にはきれいな心で神を見ることです

心の中にある嫌な思いのようなものがあれば、イエスさまの前に吐き出して下さい。涙のように、鼻水のように、くしゃみのように、神さまの前に吐き出してください。 きっと気持ちがきれいになります。それが私たちの魂の「カタルシス」です。この言葉は元々ギリシャ語です。カタルシス」はギリシャ語の「カタロス」から出た言葉ですが、マタイによる福音書5章にはイエスさまが山の上で教えた説教がありますが、そこにはイエスさまがこの言葉を用いて語られました。‐5:8 心の清い者は幸いである。私たちは神を見るからです。の「清い」 が「カタロス」です。‐ 心が清くなった人は、神に出会うのです。神の前に泣けば、心がきれいになります。「見る」は目で見るの意味ではなく、体験するという意味です。桜が咲くまでは2週間ほど残っていますね。吐き出すとことと涙を流すことは悔い改めとしましょう。カタルシスとこの春の雨が終わり、桜が咲く頃にはきれいな心で神を体験します。

 

2019年3月10日、故郷の家・東京 エル・シオンチャペル礼拝 説教の中で

 

시편 32:3,5 내가 토설치 아니할 때에 종일 신음하므로 내 뼈가 쇠하였도다…내가 이르기를 내 허물을 여호와께 자복하리라 하고 주께 내 죄를 아뢰고 내 죄악을 숨기지 아니하였더니 곧 주께서 내 죄의 악을 사하셨나이다

 

봄비가 내립니다. 곧 날씨가 풀리고 따뜻한 봄이 오겠지요. 3월 들어 봄을 맞이하러 나가고 싶어서 자주 산책을 나갑니다. 걷다 보니 매실나무는 곳곳에 꽃을 피웠더군요. 곧 벚나무도 꽃을 피우기 시작할 겁니다. 올해 동경의 벚꽃은 3월21일에 개화해서 29일이 만개한다고 합니다. 꽃이 피는 아름다운 계절이지만 저는 지난주에 괴로웠습니다. 화분증이거든요. 일본에 온 지 20년째가 됩니다만 지금까지는 잘 견딘 것 같은데 작년부터 화분증이 시작되었습니다. 꽃가루가 코로 들어오면 재채기가 나기도 합니다. 한 번 하기 시작하면 연속으로 몇 번이나 정신없이 재채기를 해대야 합니다.

 

그러나 재채기가 나오는 이유는 몸 안에 들어온 불필요한 이물질인 꽃가루를 내뱉기 위해서 몸이 방어하고 있기 때문이겠지요. 코에서도 마찬가지 이유로 콧물을 내보냅니다. 코로 들어온 꽃가루를 내보기 위해서 코는 콧물을 흘려서 씻어냅니다. 재채기를 크게 하거나 화장지로 콧물을 풀고 나면 “아 괴롭다”. “힘들다” 등등의 말을 하지만 사실, 재채기를 하고 난 순간과 콧물을 풀고 난 순간은 후련하고 상쾌합니다. 오염된 것을 토해내고 끄집어냈기 때문입니다. 코와 입뿐이 아닙니다. 눈은 이물질이 들어오면 스스로 눈물을 흘려 씻어냅니다. 이것도 오염된 것을 정화하기 위한 몸의 활동입니다. 몸이 살아있다는 증거입니다.

 

눈물은 눈을 씻어내기 위해서 나오기도 하지만, 마음을 씻어내기 위해서도 나옵니다. 그래서 슬프면 울어야 합니다. 울고 나면 그 슬픔과 고통에서부터 조금은 후련해집니다. 저의 아버지가 임종했을 때 어머니는 침대맡에서 울었습니다. 간병인들이 어머니를 위로하면서 침대 밖으로 이끌고 나왔습니다. “아버님이 천국에 가셨으니 울지 말라”는 말로 어머니를 위로했습니다. 나는 그 간병인들을 물리치고 어머니가 침대맡에서 더 울 수 있도록 했습니다. 천국에는 아버지가 간 것이고 어머니는 이 땅에서 남편을 잃은 것입니다. 죽은 자에 대한 산 자의 감정은 마땅히 슬픔이어야 합니다. 어머니는 더 울어야 했습니다. 몸과 마음의 상태가 솔직하게 눈물이라는 것으로 나오는 것입니다. 울지 않으면 슬픔은 체해버릴지도 모릅니다.

 

눈물을 흘리듯이 콧물을 풀어내듯이 재채기를 하듯이 마음에 있는 오염된 것을 토해내고 나면 그것이 우리 영혼의 카타르시스일 겁니다. 그것도 믿음이 살아있다는 증거입니다. 카타르시스의 원형이 ‘카타로스’라는 형용사입니다. 예수님이 가르치신 산상수훈, 마태복음 5장 8절에 이 형용사가 쓰였습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의 ‘청결’ 이 ‘카타로스’입니다. 마음이 깨끗해지면 하나님을 본다고 했습니다. ‘본다’는 눈으로 본다의 의미가 아니고 체험한다는 의미입니다. 벚꽃이 피기까지 2주 정도 남은 것 같습니다. 토설과 눈물은 회개라고 합시다. 그 카타르시스가 지나가고, 그리고 이 봄비도 지나가고나면 벚꽃이 필 즈음에는 청결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볼 것입니다.

2019년3월10일 고향의 집 동경 엘시온채플 예배 설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