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T

사무엘하 19:1~8
19:1 혹이 요압에게 고하되 왕이 압살롬을 위하여 울며 슬퍼 하시나이다 하니
19:2 왕이 그 아들을 위하여 슬퍼한다 함이 그 날에 백성들에게 들리매 그 날의 이김이 모든 백성에게 슬픔이 된지라
19:3 그 날에 백성들이 싸움에 쫓겨 부끄러워 도망함 같이 가만히 성으로 들어가니라
19:4 왕이 얼굴을 가리우고 큰 소리로 부르되 내 아들 압살롬아 압살롬아 내 아들아 내 아들아 하니
19:5 요압이 집에 들어가서 왕께 말씀하되 왕께서 오늘 왕의 생명과 왕의 자녀의 생명과 처첩들의 생명을 구원한 모든 신복의 얼굴을 부끄럽게 하시니
19:6 이는 왕께서 미워하는 자는 사랑하시며 사랑하는 자는 미워하시고 오늘 장관들과 신복들을 멸시하심을 나타내심이라 오늘 내가 깨달으니 만일 압살롬이 살고 오늘 우리가 다 죽었더면 왕이 마땅히 여기실 뻔하였나이다
19:7 이제 곧 일어나 나가서 왕의 신복들의 마음을 위로하여 말씀하옵소서 내가 여호와를 가리켜 맹세하옵나니 왕이 만일 나가지 아니하시면 오늘 밤에 한 사람도 왕과 함께 머물지 아니할지라 그리하면 그 화가 왕이 젊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당하신 모든 화보다 더욱 심하리이다
19:8 왕이 일어나 성문에 앉으매 혹이 모든 백성에게 고하되 왕이 문에 앉아 계시다 하니 모든 백성이 왕의 앞으로 나아오니라 이스라엘은 이미 각기 장막으로 도망하였더라

 

전쟁에서 승리하였지만 다윗이 압살롬의 죽음을 슬퍼하고 있으니 분위기가 저조했습니다. 군대는 수고를 치하받지 못하고 오히려 죄인이 된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요압은 슬퍼하는 다윗에게 가서 따집니다. 목숨 걸고 당신을 지켜주었는데 우리가 당신의 아들을 죽인 죄인인가라는 항변입니다. 가정사로 인해서 국가재난을 초래했으니 사실 다윗도 공사 구분을 해야 하는 때이기는 했습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요압의 태도는 대단히 불손합니다.

 

압살롬은 그물에 걸린 것처럼 저항할 수 없던 상태였습니다. 생포할 수 있었으나 사살했습니다. 요압은 압살롬을 죽이지 말라고 했는 명령을 무시했고 그렇게 죽은 아들의 죽음을 슬픔하는 다윗을 책망합니다. 요압은 다윗에게 슬퍼할 시간조차 주지 않습니다. 요압는 군의 실권자입니다. 요압의 말을 읽어보면 왕의 공사 구분을 촉구하고 반란 후 정국을 수습하게 하기 위한 충언은 아닙니다. 자신이 공로를 인정받지 못하는 분노 때문이었습니다.

 

다윗에게는 슬퍼할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인간의 죽음 앞에는 멈추어야 합니다. 원수의 죽음 앞에서도 인간이라면 인간의 죽음 앞에서는 애도하고 겸손해져야 합니다. 슬픔이라는 감정에는 논리가 아니라 시간이 필요합니다. 아들의 죽음을 슬퍼하는 다윗을 겁박하는 이 교만한 인간은 과연 영원히 남을 죽이면서 그 공로로 살겠습니까? 다윗의 아들 압살롬을 죽인 냉정한 요압은 훗날 다윗의 아들 솔로몬에게 냉정하게 죽임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