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T

시편 35:19~28
35:19 무리하게 나의 원수된 자로 나를 인하여 기뻐하지 못하게 하시며 무고히 나를 미워하는 자로 눈짓하지 못하게 하소서
35:20 대저 저희는 화평을 말하지 아니하고 평안히 땅에 거하는 자를 거짓말로 모해하며
35:21 또 저희가 나를 향하여 입을 크게 벌리고 하하 우리가 목도하였다 하나이다
35:22 여호와여 주께서 이를 보셨사오니 잠잠하지 마옵소서 주여 나를 멀리하지 마옵소서
35:23 나의 하나님 나의 주여 떨치고 깨셔서 나를 공판하시며 나의 송사를 다스리소서
35:24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 주의 공의대로 나를 판단하사 저희로 나를 인하여 기뻐하지 못하게 하소서
35:25 저희로 그 마음에 이르기를 아하 소원 성취하였다 하지 못하게 하시며 우리가 저를 삼켰다 하지 못하게 하소서
35:26 나의 해를 기뻐하는 자들로 부끄러워 낭패하게 하시며 나를 향하여 자긍하는 자로 수치와 욕을 당케 하소서
35:27 나의 의를 즐거워하는 자로 기꺼이 부르고 즐겁게 하시며 그 종의 형통을 기뻐하시는 여호와는 광대하시다 하는 말을 저희로 항상 하게 하소서
35:28 나의 혀가 주의 의를 말하며 종일토록 주를 찬송하리이다

 

죄는 하나님을 떠난 것 그 자체이며 또는 그것이 만들어내는 결과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사람은 기준을 상실한 것이기 때문에 결국 자기 자신을 기준 삼게 되어있습니다. 매번 강조하지만 자기를 섬기는 것이 우상숭배입니다.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 사람은 누구나 우상을 섬길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나 자신 안에서도 하나님이 희미해지면 곧 틀림없이 내 안에 우상이 자라고 내 안에 우상이 자라면 내 안에 하나님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자기중심은 곧 죄입니다. 말씀이 곧 하나님이라고 하셨는데 그것은 말씀 앞에서 나 자신이 객관화되기 때문입니다. 말씀이 기준이라면 그 말씀 앞에서 자신을 비우고 자신은 하나님의 말씀이 조명하는 대로 드러나야 합니다.

 

자아중심주의(Egocentrism)는 자신과 타자를 구분할 줄 모릅니다. 자신의 관점 이외에 다른 시각을 인정하거나 이해하는 능력이 없습니다. 자기 자신을 사물의 중심이라고 생각하고 그 원리로 세상의 사물을 해석합니다. 그런데 본인은 자신이 이상한 것을 모릅니다.

 

이기주의(egoism)와 자아중심주의(Egocentrism)는 좀 다릅니다. 이익을 보면 미쳐서 사람이 보이지 않는 사람을 이기주의자라고 합니다. 그런데 자아중심주의자는 이익과 손해와 상관없이 무조건 내가 정당한 사람입니다. 그러니 늘 남에게 불쾌함과 불편을 줍니다. 그러나 결국에 가장 불편해지는 사람은 본인 자신입니다.

 

진리를 보고 듣고도 각각 다르게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 서지 않고 자기 안에 자기가 만든 하나님을 가두어 놓고 그것을 믿습니다. 자기 안에서 진리를 편집하기 때문입니다. 자아중심주의자 안에 진리가 들어가면 자아는 그 진리를 지배하려고 합니다. 결국 왜곡됩니다.

 

다윗의 탄원의 조건은 진실이고 공의입니다. 다윗이 탄원하고 있는 것은 그들의 오만과 착각이 성공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내가 이기고 저들이 지게 해주세요라는 요구라기보다 변질되고 왜곡된 신념과 확신이 성공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크리스마스 캐롤』이 생각납니다. 스쿠루지 영감 이야기입니다. 스쿠루지는 이기주의자이면서 자아중심주의자였습니다. 그런 그가 극적으로 변화하게 되는 결정적 계기는 자기가 자기를 벗어나 자기를 객관적으로 보게 된 후입니다.

 

내 안에 들어간 하나님은 잘 일그러집니다. 하나님을 내가 생각하는 방식으로 내 안에 구겨 넣으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믿기는 믿지만 말씀 앞에 서려고 하지 않은 사람들은 다 그런 사람들입니다. 다윗은 오해되고 왜곡된 자아중심적 신앙, 그리고 그 안에서 축복과 형통을 찾으려는 이기적 신앙의 시대를 통렬하게 비판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