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T

요한복음6:52-59
6:52 이러므로 유대인들이 서로 다투어 가로되 이 사람이 어찌 능히 제 살을 우리에게 주어 먹게 하겠느냐
6:5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6:54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6:55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6:56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 안에 거하나니
6:57 살아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인하여 사는것 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인하여 살리라
6:58 이것은 하늘로서 내려온 떡이니 조상들이 먹고도 죽은 그것과 같지 아니하여 이 떡을 먹는 자는 영원히 살리라
6:59 이 말씀은 예수께서 가버나움 회당에서 가르치실 때에 하셨느니라

 


우리 교회는 매달 첫째 주 주일 예배에 성찬식을 합니다. 식빵을 작게 썬 빵을 예수님의 몸으로 믿고 먹고 포도 주스를 예수님의 피로 믿고 받아마십니다. 이스트를 넣지 않고 구운 과자 같은 성찬전병으로 해보고 싶기도 하고 큰 빵을 가운데 놓고 각자 뜯으면서 해보고 싶기도 하고 포도 주스가 아닌 잘 숙성된 포도주로 해보고 싶기도 합니다.

 

이것은 교회에서 하는 고백이나 봉헌이나 예배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성격의 일입니다. 성찬은 예배자가 하나님께 봉헌하는 행위가 아니라 성도가 그리스도와 연합하는 의식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사람은 자신 안에 거하고 자신도 그 사람 안에 거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성찬은 기독교 신앙의 모든 것을 담는 가장 중요한 성례입니다.

 

가톨릭이 이 성찬을 절대시하는 것에 대한 반작용으로 개신교에서는 오히려 성찬을 형식적인 것으로 여기는 경향이 적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성찬의 중요성에 있어서는 프로테스탄트나 가톨릭이나 오소독스나 다르지 않습니다. 성찬은 예수님이 직접 제정하시고 명령하신 성례입니다. 개신교 안에서도 성찬은 더욱 소중히 지켜져야 하는 믿음의 실체입니다.

 

목사 안수를 받기 전에 가장 불편했던 것이 매달 성찬을 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목사가 되자마자 매달 성찬식을 하고 있습니다. 신학적 전통에 따라서는 매주 주일 예배에 성찬을 하는 교회도 있습니다. 형식이라고 생각한다면 그렇게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 안에 연합의 실재가 있기 때문입니다.

 

교파에 따라 성찬에 대한 해석은 다릅니다. 다른 것에 대해서 공격할 필요는 없습니다. 자신이 참여하고 있는 성례의 의미를 확인하고 지키면 됩니다. 로마 가톨릭은 성찬식을 성체성사라고 하는데 성체성사 자체를 예수님의 죽음을 재현하는 희생 제사로 봅니다.

 

사제가 떡과 포도주를 축성할 때 실제로 물리적 변화로서 떡과 포도주가 그리스도의 살과 피로 변한다는 실체 변화를 믿습니다. 이것을 실재임재설이라고 하고 주로 화체설이라고 부릅니다. 정교회도 이것과 크게 다르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게 믿지는 않습니다. 성찬식에 예수 그리스도가 실제적으로 임재하시지만, 그것이 육체가 아니듯이 빵과 포도주가 물리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살로 변하는 것이 아니라 영적으로 연합한다는 것을 믿습니다. 성찬의 핵심은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하고 예수 그리스도가 성도들 안에 거한다는 예수 그리스도와의 약속의 말씀과 일치하는 것입니다.

 

신학적으로 교회의 존재 근거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말씀의 선포이고 또 하나는 성례전의 집행입니다. 그러므로 교회 건물이 있고 조직과 재정이 있고 사람이 있다고 하여도 말씀의 선포와 세례와 성찬이 없으면 신학적으로 교회는 성립하지 않는 것입니다.

 

가톨릭에서는 일곱 가지의 성례가 있습니다만 프로테스탄트 교회의 성례는 세례와 성찬 두 가지만을 두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성례의 공통점은 무엇입니까? 성도가 그리스도와 연합하는 것입니다. 세례는 성도와 그리스도와의 신비로운 연합의 시작이고 성찬은 그 연합의 지속입니다.

 

칼빈은『기독교 강요』에서 우리를 위해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로 비롯되는 구원의 축복에 참여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인격과의 교제와 분리될 수 없는 것이고 그것은 그리스도의 육체와의 연합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했습니다. 따라서 칼빈의 신학에서 성육신은 필연적이고 필수적인 것입니다.

 

그 인격적 교제와 육체의 연합이 성찬입니다. 칼빈은 이 연합에 대해서 교환이라는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그리스도가 성도에게 속한 것을 가져가시고 그리스도의 소유를 성도에게 부여해 주시는 교환입니다.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6:55 」이 양식으로 인해 성도는 영양분을 공급받아 영원한 생명에 이르게 됩니다. 성찬은 형식이 아니고 영혼과 육체에 변화가 일어나는 가장 핵심에 속한 것입니다. 떡과 포도주는 실제의 떡과 피로 변하는 것이 아닌 것으로 믿지만 성찬을 통해 그리스도와 연합한 성도의 믿음과 영생은 실제가 됩니다.

 

오늘 글의 제목은「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있습니까?」라고 썼습니다.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고 어떻게 증명할 수 있겠습니까? 아무도 그것을 확증적으로 증명해 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공동체 안에서 드려지는 성찬을 통해서 그리스도와 연합하는 신비의 경험을 쌓아가면서 우리는 그리스도와 하나가 된 것을 확인하고 확신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와 성도가 하나로 연합하는 과정에서 공동체는 불가분의 관계입니다. 성찬에 연합의 신비가 있습니다. 성찬을 마치고 나면 연합하고 일치하여 하나가 됩니다. 교회가 있고 예배가 있고 성찬이 있는 한 그리스도의 살과 피는 성도에게 생명을 부어주는 샘과 같이 끊이지 않고 솟아 나오고 흘러갑니다. 그리스도의 살과 피에 대한 교제가 영원의 생명을 사모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필수적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것은 하늘로서 내려온 떡이니 조상들이 먹고도 죽은 그것과 같지 아니하여 이 떡을 먹는 자는 영원히 살리라 6:58」 사람들은 만나를 내려달라고 구했지만 예수님은 자신이 하늘에서 내려온 만나라고 하셨습니다. 2월 2일 예배에는 성찬식과 교회 총회가 있습니다. 그리스도와 구원받은 성도와 공동체가 연합하는 날입니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사모하고 거룩한 공회와 성도의 교통함의 일치를 기대함으로 예배에 모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