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T

 

아직 햇살이 뜨겁지만 여름의 것과는 다르다. 좀 온화해졌고 편안해졌다. 이 햇살 아래서 무언가가 익어가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여름이 열정의 계절이라면 가을은 성숙의 계절이다. 성숙(成熟)과 뒤집어서 쓰는 숙성(熟成)이라는 말이 있다. 숙성은 안달하지 않고 가만히 묵히는 것이다. 숙성하는 동안에 안에 있는 것이 익어가고 깊은 맛이 들어간다.

 

화학적으로는 자연 상태에서 음식의 분자가 분해되어 변형되는 것이 숙성이다. 숙성의 경험을 지내온 것은 숙성 전의 것과 맛이 달라진다. 애를 써보고 애원을 해봐도 내 마음대로는 되지 않으면 그때 마음이 숙성(熟成)된다. 마음의 분자 구조가 분해되는 것이다. 부심(腐心)이라는 말이 있다. 마음이 썩는다는 말이다. 숙성되려면 속을 썩혀야 한다. 속을 썩히는 부심(腐心)을 지나고, 마음의 구조가 분해되고 해체되는 숙성(熟成)을 지나고 나면 그것이 성숙(成熟)이다.

 

우리는 모두 자연스레 그 과정들을 지나간다. 고집 부리지 않고 억지 부리지 읺고 외면하지만 않는다면 모두 숙성의 시간을 지나게 될 것이고 어느 날 가을을 닮아 성숙하게 될 것이다. 아침이 선선해지고 저녁에는 풀벌레 소리가 들릴 것이다. 가을에는 한 발이라도 내 영혼이 성숙을 이룰 수 있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