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 게으름
지난 주에 바울에게 의와 절제와 심판에 대한 설교를 들었던 벨릭스는 잠시 두려움을 느꼈지만 바울을 돌려보내고 그 감정을 스스로 속여버렸습니다. 구원에 있어서 가장 먼 미래는 내일입니다. 구원과 회개의 기회를 내일로 미루어 버리는 영적 나태에 대해서 지난 주에는 「구원에 이르지 못하는 습관」이라는 제목으로 설교했습니다.
오히려 뇌물을 요구하는 벨릭스
‘불러서 이야기를 들어놓고 이제는 가도 된다. 더 이상 듣고 싶지 않다는 것이죠. 다시 필요가 있으면 그때 부르겠다’고 말한 것입니다. 벨릭스에게 다시 찬스가 있었을까요? 지난주 본문에서 벨릭스는 바울을 돌려보냈지만, 오늘 본문은 벨릭스가 바울을 자주 불러서 이야기했다고 말합니다. 감금된 시간은 판결을 일부러 미루어서 2년이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벨릭스는 바울에게 복음에 대해서 좀 더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다시 만나서 이야기했지만 그 주제는 처음 바울에게서 들었던 의와 절제와 심판에 대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주제는 이미 들은 복음의 심화된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본문에서는 벨릭스가 바울에게서 돈을 바랬기 때문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의와 절제와 심판은 들으면 기분이 안좋아지지만, 돈은 생각만해도 행복해지는 것이니까요. 벨릭스는 그 쪽을 택했습니다. 벨릭스가 집착한 바울의 말은 ‘의와 절제와 심판의 말씀’이 아니고, 바울이 자신의 혐의에 대해서 변호할 때 했던 말, 예루살렘의 형제를 돕기 위해 자금을 가지고 왔다는 말을 했는데 벨릭스는 그 ‘바울의 돈’을 기억하고 있었고 그것에 집착하고 있었습니다. 현재 바울에게 돈이 많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바울을 석방시키기 위해 누군가가 어떤 자금을 동원해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래서 벨릭스는 바울이 뇌물로 쓸 자금조달을 위해 자유롭게 외부와 연락할 수 있도록 해 준 것입니다. 벨릭스가 바울의 옥중 생활을 자유롭게 배려한 것은 그런 이유였습니다. 벨릭스에게 하나님의 심판을 말해주어도 불의와 탐욕은 오히려 더 담대해 졌습니다. 바울에게 지적받았던 불의와 탐욕은 여전하고 게다가 그 말을 전해준 바울에게 오히려 뇌물을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진실을 돈으로 거래함
돈으로 재판을 거래하자는 것이지요. 한국의 대법원장（最高裁判所長官）을 지낸 사람이 재판을 거래했다는 혐의로 구속되어 재판을 받고 있습니다. 최고 학부에서 공부했고 최고의 엘리트로 인정받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 탁월한 학력과 지식이 양심과 진리에 속해 있지 않으니 죄와 불의의 도구가 되는 것입니다. 아직 재판 중이니 결론적으로 말할 수는 없겠지만 재판거래라는 혐의가 사실이라면 입헌민주주의를 유린한 역사적 책임을 져야 할 것입니다. 국가와 민주주의의 수치이지요. 저는 이런 종류의 것은 용서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사랑이 없어서가 아니라 사랑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 가기 위해서 입니다. 돈과 권력을 움직여 법조차도 컨트롤할 수 있다면 가난하고 억울한 사람은 무엇에 의지하면 되겠습니까? 혹시나 해서 구속된 대법원장의 종교가 무엇인지 찾아보았습니다. [개신교] 신앙을 가지고 있더군요. 놀랍지는 않았습니다. 그를 대법원장에 임명한 전임 대통령은 그보다 더한 비리혐의를 받고 구속된 교회 장로였거든요. 빈정거리는 것이 아니고 인정하고 싶지 않은 교회의 현실을 아프게 고발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중성의 문제
사실 벨릭스의 상태는 지난 시간의 본문보다 더 심각합니다. 지난 시간에는 비겁하게 피하는 것 같았지만, 오늘 본문에서는 파렴치하고 노골적입니다. 벨릭스이던지 한국의 전임 대통령이던지 전임 대법원장이던지 그들을 악의 덩어리로 치부해 해버리면 문제는 간단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정말 악 그 자체의 사람들이었을까? 그들은 지옥에서 올라온 사탄이었을까? 마음 안에 양심은 없었을까? 들었던 심판 이야기 때문에 내면의 갈등은 정말 없었을까? 아닐 겁니다. 이들에게서 발견되는 인격은 오직 악의 덩어리라기 보다 이중성이라는 것에서 찾아야 할 것입니다. 착한 사람이고 존경받던 사람, 지킬 박사 안에 숨겨진 악, 하이드라는 이중성과 같은 것이지요. 지킬 박사는 선과 악이 인간의 마음 속에서 서로 갈등하는 것을 ‘인류가 짊어진 저주’ 라고 했습니다. 자기 안에 있는 악을 대면한 사람의 절규 같은 것이지요.
그러나 그리스도인이라면 좀 다르지 않을까 우리는 생각합니다. 그런데 아닙니다. 그리스도인도 똑 같습니다. 어쩌면 더 치열할지도 모릅니다. 마르틴 루터는 그것이야말로 그리스도인의 실존이라고 했습니다. 무엇이 그리스도인의 실존이란 말입니까? ‘선과 악이 매일같이 갈등하며 싸우는 삶’ 말입니다. 루터의 개념으로 말하자면 우리는 여전히 ‘의인인 동시에 죄인’입니다. ‘용서받은 죄인’입니다. 죄 때문에 여전히 갈등하고 고민하는 때로는 낙심하고 절망하는 사람인 것이지요. 여러분의 경험은 어떠셨습니까? 믿음으로 인해서 항상 선이 승리하셨습니까? 해를 거듭할수록 오히려 현실의 이중성에 자꾸만 굴복하게 되지는 않으셨습니까?
모든 사람은 이중적이다
지난주는 벨릭스를 통해서 우리의 죄가 드러내는 심각한 현상인 영적 나태, 영혼에 대한 무책임에 대해서 말했다면, 오늘은 우리에게 그것보다 더 일반적이라고 할 수 있는 주제인 이중성이라는 문제에 대해서 생각해봅시다. 우리는 누군가로부터 이중적이라는 비난을 받으면 대단히 모욕적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현실은 모든 사람의 인격은 명백하게 이중적입니다. 기분은 나쁘지만 인정하기 않을 수 없는 것이지요. 사실 이중성만 가지고는 이 세상 살아가기는 힘들 겁니다. 우리는 더 다중적인 모습을 가진 사람들이고 사실 그래야만 이 복잡한 세상에서 복잡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 지도 모릅니다. 엄밀하게는 세상과 사람이 이중적이지 않다면 그것이 더 무서운 것이지요. 아무도 이중적이지 않아서 자신의 것을 감추지 않는다면 세상은 갈등과 폭력으로 혼란스러워질 것입니다. 제가 만약 전혀 이중적이지 않다면 지금 이 설교를 할 수도 없을 것입니다. 이중성은 악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인간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것이지요. 아무도 이 이중성 또는 양면성에 대해서는 아니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과 모든 인간 안에는 선과 악이 이중적으로 공존합니다. 겉으로는 선한 것 같지만 내면의 깊은 곳에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악이 도사리고 있는 것이지요.
어떤 뇌과학자들은 좌뇌와 우뇌가 서로 협력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대립한다고 말했습니다. 이언 맥길크리스트라는 영국 정신과 의사는 자신의 연구결과를 통해서 이렇게 선언했습니다. ‘나는 두 명이다’ …자기 안에 두 명의 인격이 있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좌뇌와 우뇌가 마치 다른 인격체 두 명이 존재한다는 것처럼 서로 다르게 판단한다는 것입니다. 그 증거로 제시한 것이 이 의사가 발작 증상을 일으키는 한 환자를 치료하는 과정에서 좌뇌와 우뇌를 연결하는 뇌량(脳梁, Corpus Callosum) 이라는 조직을 절단하는 수술을 했답니다. 수술 뒤 환자의 발작 증상은 줄었지만, 환자에게는 매일 치열한 싸움이 시작됐습니다. 오른손이 무언가를 하려고 하면 왼손이 다른 것을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뇌가 두 개로 갈라져 각각 다른 명령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간단한 쇼핑이나 아침에 옷을 골라 입는 일에도 어려웠답니다. 두 손이 서로 싸우는 것입니다. 뇌를 오른쪽 왼쪽으로 잘라내는 수술은 하지 않았어도 옷 살 때 결정 장애 가진 분들 많지 않습니까? 그것의 극단적 상황인 것입니다. 그 환자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나의 오른손과 왼손은 매일 혈투을 벌인다”고 말했습니다. 이 사례는 의학적으로 이례일지 모르지만 모든 인간은 이중성의 고통 속에서 삽니다.
바울의 이중성
바울도 자신의 이 이중성에 대하여 심각한 갈등과 괴리를 느낀 적이 있었습니다. 느낀 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인 이상 바울에게도 그것은 일상이었겠지요. -7:22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7:23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7:24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 7:25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 이것은 단지 약함의 고백이 아니고 보다 성숙한 신앙의 고백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을 감추고는 신앙의 고백 자체가 이중적이고 위선적일 수밖에 없으니까요. 저는 가톨릭을 싫어하지도 않고 굳이 어떤 개신교 입장처럼 가톨릭을 이단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만, 사람을 성스러운 경지에 올리는 것, 성자라는 것은 틀린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존경은 할 수 있지요. 그러나 아무리 기독교에 공헌한 믿음의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그 믿음으로 인해 순교까지 했다고 하더라도, 인간은 살아있는 동안 죄를 이기지 못해 고통받는 존재입니다.
이중성의 긍정적 반작용
“벨릭스 같은 인간은 구원받지 못합니다.” 라고 말해버리면 간단하겠지요. 그러나 벨릭스도 한 명의 인간이고 우리도 선과 악, 믿음과 불순종 사이에서 매일 갈등하는 입장에서 보면 그리 단순하게 정리할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인간의 이중성을 생각하고 있는 우리에게 벨릭스의 이중성은 경악할 일도 아닙니다. 정의의 재판에 뇌물이 들어오고 재판이 거래되는 죄는 용서해서는 안될 반사회 행위이지만, 인간의 이중성 안에서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벨릭스에 대한 동정론으로 설교를 끝낼 생각은 없습니다. 심판은 하나님이 하시고, 기준은 성경에 제시되어 있고, 자기 결정에 책임을 지는 것은 자신의 인생과 영혼이니까요.
탈무드에는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아이가 자기 마음 안을 보니 흰 말과 검은 말이 서로 싸우고 있는 것입니다. 아들이 그것을 보고 아버지에게 물었습니다. 아빠, 내 안에 흰 말과 검은 말이 싸우고 있어요. 어떤 말이 이길까요? 아버지가 대답했습니다. “네가 이기라고 하는 말이 이길 것이다.” 정말 육체가 연약해서 어쩔 수 없이 죄 짓습니까? 아닙니다. 우리가 죄를 명령하고 있고 그것을 지원하고 응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죄를 사모하고 있습니다. 우리 마음 안에는 불의와 정의가 뒤섞여 있고, 절제와 탐욕이 혼재하고 있고, 믿음과 불순종이 항상 함께 있습니다. 선과 악이 불규칙하게 섞여 있습니다. 우리는 완벽한 상태의 선은 될 수 없지만 인간됨을 포기하지 않아야 하기 때문에 싸워야 합니다. 신자의 조건은 신자다움을 위해서 싸우는 것입니다. 이기는 방법은 이것입니다 내가 이기라고 하는 말이 이깁니다. 내가 선을 선택하면 선이 내 인생 안에서 나를 이기게 해줍니다. 내 안에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이기라고 응원하십시오. 우리 안에 죄의 두려움은 패배하고 믿음의 평안이 이기라고 말하십시오. 선과 믿음의 말이 이기라고 하십시오. 인간이 이중성이라는 존재론적 문제는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역으로 생각하면 그 이중성이라는 것 때문에 인간이 가끔은 선을 행하지 않습니까? 이 이중성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을 믿을 수 있었지 않습니까? 저에게 이중성이 없었다면 어떻게 성경에 관심을 가졌겠습니까? 저는 성경을 배우기 시작했을 때야말로 정말 심각한 위선을 느꼈습니다. 나 답지 않았거든요. 예수를 믿고도 오랫동안 그런 고민이 있었습니다. 내가 착한 척 예수믿는 그리스도인이 되도 될까? 그런 의미에서 이중적인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랬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을 수 있었던 것 아니겠습니까? 선과 진리에 대한 관심은 전적 타락한 인간에게 이중성이 있기 때문에 주어진 은혜가 아니겠습니까? 불의와 탐욕으로 점철된 벨릭스에게 의와 절제와 진리를 찾아보려는 이중성이 잠시만 주어졌다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뇌물을 바라는 벨릭스의 이중성이 미운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해서 한번 더 물어보는 그 이중성이 없었기 때문에 벨릭스의 영혼이 안타깝습니다. 어느 누구도 자기다워서는 예수를 믿을 수 없습니다. 우리 안에 죄가 있음을 인정합니다. 우리 안에 분명히 이중성이 있지만 그러나 그 이중성 때문에 우리는 우리에게 익숙한 불의와 탐욕과 죄악을 배신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이중성으로 그것을 배신하십시오. 그 이중성 때문에 맛이 갔다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나답지 않았던 믿음을 추구할 수 있습니다. 그것을 추구합시다. 그 탁월한 이중성을 가진 성도들이 되시기를, 전혀 이중적이지 않으므로 변함없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19년 3월 10일 에다가와 사랑의 교회 주일예배 사도행전 강해 조용길 전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