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집을 나와 4월의 밤거리를 걸었다. 누구의 노랫말처럼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꽃잎이 떨어지고 나니 저녁 바람에 이는 것은 연녹색 잎새들이었다. 그림 위를 걷다 보니 긴자를 지나 동경역까지 걸어버렸다. 한잔하고 나온 직장인들이 거리에 낙서를 하듯 도시를 긁적이고 있었다. 기분이 좋았는지 웃고 떠들고 있었으나 어딘가 안쓰러워 보였다. 선배 격이나 되어 보이는 이들의 어깨는 떡 벌어져 있었고 목소리에는 2차를 부를 기세로 자신감에 가득 차 있었다.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유리로 만든 마천루들은 더 자신 있어 보였다.

 

그때, 불어오는 바람에 풀들이 드러눕는 환상을 보았다. 정갈한 보도블록과 아스팔트에는 풀이 없었지만 자신 있게 서 있는 건물들이며 술집이며 수트 차림의 사람들의 도시는 바람에 일렁이는 풀밭 같아 보였다. 바람이 침묵하여 그들을 세워놓고 있었다. 바람이 숨을 죽인 동안 도시와 사람들은 그 시대에 서 있다. 잠시 잠깐 후 바람이 일어나 불기 시작하면 풀들은 아무런 저항도 없이 눈을 감고 드러누울 것이다. 건물도 사람도…… 땅은 그대로 있고 바람은 여전히 불 것이다. 밤이슬이 내리면 풀이 죽고, 해가 뜨면 풀은 또 마르고, 연한 풀들은 과거를 기억함 없이 올라오고, 자신만만한 젊은 풀들 위로 바람은 또 불어올 것이다

 

빅토르 위고의『노트르담의 꼽추』에서 노트르담 성당의 종탑은 특별한 배경이다. 꼽추인 콰지모도는 악마같은 주교 프롤로에 의해 그 종탑에 갇혀 살아야 했고, 그 콰지모도가 흠모했던 에스메랄다는 노트르담 성당의 종탑에서 잡혀가 화형을 당해야 했고, 에스메랄다를 죽인 프롤로는 꼽추 콰지모도에 의해 그 종탑에서 떨어져 죽어야 했다. 사랑도 권력도 인생도 그 종탑에서 죽었다. 전설같던 고딕의 보물, 무엇이 그리 바빴는지 한 번 가보지도 못했던 노틀담 성당의 종탑은 오늘 화재로 무너져 내렸다. 천년이 하얗게 무너져 내리는 것만 같았다. 바람은 노틀담 성당 안으로 불어들어가 종탑을 활활 태우고 그것을 무너뜨렸다.

 

「다윗의 아들 예루살렘 왕 전도자의 말씀이라 전도자가 가로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사람이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자기에게 무엇이 유익한고 한 세대는 가고 한 세대는 오되 땅은 영원히 있도다 해는 떴다가 지며 그 떴던 곳으로 빨리 돌아가고 바람은 남으로 불다가 북으로 돌이키며 이리 돌며 저리 돌아 불 던 곳으로 돌아가고 모든 강물은 다 바다로 흐르되 바다를 채우지 못하며 어느 곳으로 흐르든지 그리로 연하여 흐르느니라 만물의 피곤함을 사람이 말로 다 할 수 없나니 눈은 보아도 족함이 없고 귀는 들어도 차지 아니하는도다 이미 있던 것이 후에 다시 있겠고 이미 한 일을 후에 다시 할지라 해 아래는 새 것이 없나니 무엇을 가리켜 이르기를 보라 이것이 새 것이라 할 것이 있으랴 오래 전 세대에도 이미 있었느니라 이전 세대를 기억함이 없으니 장래 세대도 그 후 세대가 기억함이 없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