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ssage

【呪いの木で結ばれた初穂】

Ⅰコリント15:19-26

趙鏞吉 師

 

▶ アベルのささげものは、大切なことのために、自分の最も大切なものを献げたこと

羊を飼っていたアベルは「羊の初子の中から、それも最良のもの」を献げました。アベルは自分が持っている最高のものを神に献げたのであります。愛する人に良いものを与える時誰でも躊躇することはありません。それはささげものによって愛する人を大切にする思いが伝わるからです。大切な人に大切なものを喜んでささげることができます。一方、カインはアベルが持っていた、そのような心がないままささげものをささげました。カインは最初のもの、あるいは良いものではなく、残りのもの、食べ残ったもの、新鮮でないものをささげました。創世記は、二人の礼拝の心を比較しています。確かに愛は合理的ではありません。大切な価値があると思えば、自分の大切なものを用いるのです。愛する相手に自分の大切なものをもって仕えるという礼拝の本質は、時代が変わっても変わることはありません。礼拝は人格であって、人格というのは、一方的なものではないからです。人格は相互関係の中にあるのです。すなわち、礼拝とは、礼拝を受ける神様と礼拝をささげる礼拝者の相互的な人格の交わりなのです。

 

▶ 十字架は最も大切なことのために、神様の最も大切なものを犠牲にしたこと

聖書の中で最も大切なものを献げたのは誰ですか?聖書を最後まで読んでみると、それは、神様であることがわかります。独り子イエス・キリストを和解のささげものとした神様こそ、最も大切なものを犠牲にされたのです。神様ご自身が受けるべき礼拝に、神様ご自身が自らささげものを備えるというのはなぜですか?礼拝は、神様のための一方的なものではなく、神と人との人格的な関係であるからです。

 

▶ 初穂の祭りに結んだ十字架の初穂

イスラエルには初穂の祭りというのがあります。過越祭が終わった安息日の次の日、すなわち、今日です。イエス様が復活なさった時間が安息日の次の日の夜明けです。だからイースターは時期的に初穂の祭りと同じ日なのです。イエス様が復活なさったその時に神殿では、初穂の祭りが行われていました。パウロは、本日の本文Ⅰコリント15:20で、「キリストは、眠った者の初穂として死者の中からよみがえられました」と言いました。神様は誰を愛したのでしょうか?もちろん神様はイエス様を愛していましたが、それより大きいもの、決してあきらめることができない愛がありました。それは罪に陥ったまま死に向かって走っている悲惨な人々でした。ですからその愛のゆえに最も大切な独り子を犠牲とし、それが復活の初穂となったわけであります。

 

▶ 誰の復活を信じているのか

コリント教会には、復活はないと信じている人がいました。12節「キリストは死者の中から復活された、と宣べ伝えられているのなら、どうして、あなたがたの中に、死者の復活はない、と言っている人がいるのですか。」「死者の復活」の「死者」とは、イエス様を指しているのではありません。イエス様を信じ、死んでいった聖徒の復活を指します。ですからコリント教会で復活がないと言っていた人たちは、イエス様の復活を否定していたのではなく、人間の復活を信じていなかったのです。厳密に言うとイースターはイエス様が死なれてよみがえられたことを祝う日がありません。主の復活が初穂であるため、次に実るべき復活をお祝いする日なのです。それならお祝いの挨拶は誰にするのでしょうか?イエス様にお祝いするのではなく、主の復活を始めとし、その日に復活することを信じる信徒にお祝いするのです。私たちは「主が復活しましたから、それを信じるあなたもその日に復活することをおめでとうございます。」と挨拶できるのです。感謝は、主イエス・キリストにしましょう。そしてお祝いは、皆さんの確定された復活のためにしましょう。

 

皆に必要とする十字架と復活、その神様の愛

十字架と復活、そして神様の愛を信じなくても構わない人もいます。罪のない人は十字架が必要ありません。死なない人も主の復活とは関係ありません。愛を必要としない人は神様を必要としません。しかし、十字架と復活と永遠の命は神様の愛のゆえに実在するのです。そして私たちはみなそれを必要としています。罪がある人生は、イエス様の十字架のゆるしを信じなければなりません。死ぬべき人生は主の復活を信じなければなりません。それを悟らせ、告白するようにするのは、イエス様の霊、聖霊がなさることです。イースター礼拝に聖霊が力強く臨むことを切にお祈りします。「我は聖霊を信ず。聖なる公同の教会、聖徒の交わり、罪のゆるし、からだのよみがえり、とこしえの命を信ず」の信仰で告白するイースターになることを、復活の初穂であるイエス・キリストの御名により祝福します。

 

 

저주의 나무에서 맺힌 열매

 

고전 15:19-26

조용길 목사

 

▶ 아벨의 제사는 소중한 것을 위해서

자신의 가장 소중한 것을 사용한

아벨은 양을 길렀고 그 얻은 수확물 중에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예배를 준비했습니다. 아벨은 자신이 가진 가장 좋은 것으로 하나님께 예배드렸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대상에게 좋은 것을 줄 때는 망설이지 않습니다. 소중하게 여기는 사랑이 전달되기 때문에 우리는 소중한 사람에게 소중한 것을 드리는 것을 기뻐합니다. 한편, 가인은 아벨이 가지고 있던 그 마음이 없이 예배를 드렸습니다. 가인은 처음 것, 좋은 것이 아니고 쓰고 남은 것, 먹고 남은 것, 신선하지 않는 것으로 드린 것입니다. 창세기는 두 사람의 예배의 마음을 비교하고 있습니다. 사랑은 합리적이지 않습니다. 소중한 가치라는 것을 인정하면 자신이 가진 소중한 것을 사용하기 마련입니다. 사랑하는 대상을 위해 자신이 가진 가장 소중한 것으로 섬긴다는 예배의 본질은 시대가 바뀌어도 변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인격이라는 것은 일방적인 것이 아닙니다. 상호의 관계 안에 있는 것입니다. 예배라는 것은 예배를 받으시는 하나님과 예배를 드리는 예배자의 상호 인격의 교제입니다.

 

십자가는 가장 소중한 것을 위해서

하나님의 가장 소중한 것을 사용한

성경에서 가장 소중한 것을 예배의 제물로 내어 놓은 것은 누구입니까? 성경을 끝까지 읽어보면 그것은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독생자 예수를 화목제로 드린 하나님이야말로 가장 소중한 것을 드리신 분입니다. 하나님이 받으실 예배에 하나님이 스스로 예물을 준비하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예배가 하나님을 위한 일방적인 것이 아니고 하나님과 사람과의 인격적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초실절에 맺은 십자가의 열매

이스라엘에는 초실절이라는 절기가 있습니다. 유월절이 지난 첫 안식일 바로 다음날, 바로 오늘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시던 시간이 안식일 다음 날 새벽입니다. 그래서 부활절은 시기적으로 초실절과 같은 날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시던 그 시간에 성전에서는 초실절 제사가 드려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바울은 오늘 본문 고린도전서 15장 20절에서 예수님의 부활을 첫 열매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누구를 사랑하신 것입니까? 하나님은 예수님을 사랑하셨지만 그 보다 더 큰 것,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사랑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죄에 빠진 채 죽음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불쌍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사랑을 못 이기시고 가장 소중한 아들을 드렸고 그것이 부활의 첫 열매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누구의 부활을 믿는 것인가

고린도 교회에는 부활이 없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12절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전파되었거늘 너희 중에서 어떤 사람들은 어찌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 하느냐.’ ‘죽은 자의 부활’ 에서 ‘죽은 자’는 예수님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를 믿고 죽은 성도들의 부활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고린도 교회에서 부활이 없다고 말하던 사람들은 예수님의 부활 자체를 부정했던 것이 아니라 ‘죽은 자의 부활’을 믿지 않았던 것입니다. 엄밀하게 부활절은 예수님이 죽었다가 다시 사신 것을 축하하는 날이 아닙니다. 주님의 부활이 첫 열매이기 때문에 다음 열매에게 축하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축하의 인사는 누구에게 하는 것입니까? 예수님에게 축하하는 것이 아니고 주의 부활이 첫 열매가 되어 그날에 우리가 부활할 것은 믿는 성도에게 축하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사는 이렇습니다. “주님이 다시 사셨으니 그것을 믿는 당신도 그날에 다시 부활할것을 축하합니다.“ 입니다. 감사는 예수님께 합시다. 그리고 축하는 여러분의 확정된 부활을 위해서 합시다.

 

모두에게 필요한 십자가와 부활 하나님의 사랑

십자가와 부활과 하나님의 사랑을 믿지 않아도 되는 사람도 있습니다. 죄 없는 사람은 십자가가 필요 없습니다. 죽지 않을 사람은 주의 부활과 상관없습니다. 사랑이 필요하지 않은 사람은 하나님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십자가와 부활과 영생은 하나님의 사랑의 이유로 실제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모두 그것을 필요로 합니다. 죄가 있는 인생은 예수의 십자가의 용서를 믿어야 합니다. 죽어야 하는 인생은 주의 부활을 믿어야 합니다. 그것을 알게 하고 깨닫게 하고 고백하게 하는 것은 예수의 보내신 영, 성령이 하시는 일입니다. 부활절 예배에 성령이 힘있게 임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성령을 믿사오며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음으로 고백하는 부활절이 되기를 부활의 첫 열매 되신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