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ssage

主よ、憐れみを
マルコ10:46-52

皆さん一ヶ月ぶりです。元気ですか?皆さんの健康のためにいつも祈っています。月に一度故郷の家・東京にきて聖書のお話しができることができることを喜びと思っています。今日も愛にあふれれている神の物語である聖書の一カ所を紹介します。新約聖書のマルコによる福音書です。背景は、エリコという町です。今では世界で最も古い都市の中で一つで有名な所ですね。パレスチナの死海のすぐ上にあります。そこに「バルティマイ」という盲人が住んでいました。当時の人々は、目が見えないことが罪のゆえだと思っていてからバルティマイは社会から差別を受け、疎外されている人でした。そういうことでバルティマイは物乞いしして生活をしていました。当然に目は見えないですが、耳はよく聞こえました。 見えなくなると耳はさらに聞こえます。だから道端に座り、通り過ぎる人々の会話から世間話を聞くことはできました。ある日、バルティマイの耳にイエスさまの噂が聞こえてきました。それは イエスさまという方が多いの群れと一緒にこの町を通り過ぎるとのことでした。バルテマイはそれを聞いて何か大きい期待感がありました。まず物乞いをする人とは、人々が多く集まるところがいいですね?たくさん人が集まると、収入がよくなるかもしれないから希望があります。それが道端に座って物乞いする人の一般的な考え方だと思います。でも、実は物乞いだけではないですね。目も見え、耳もよく聞こえる健常な人でも皆が経済的価値がある所に集まるのは同じです。バルテマイにおいても物乞いでもらうお金は大切です。その日の生存の問題です。しかし、バルテマイは経済的価値とその期待以上のことを願っていました。 当然だと思うかもしれませんが、よく考えてみてください。人間は皆自分の究極的な必要が何であるか分からず、ただ経済的な価値のみを求めます。バルテマイはすでにイエスさまがこのエリコという町に入ってから、二人の盲人を癒し、悪質な金目当てのエリコの税務署長にあたるザアカイがイエスさまに出会って悔い改めたという話しをすでに聞いていました。バルテマイは見たかったです。闇を突き抜けて入ってくる光を見たかったです。その光があったこそ物事が見えます。光が照らさなければ、いくら視力が良くても見ることができません。私たちが今まで見たのは、神様が人生の道に光を照らしてくださったからです。

いよいよイエスがエリコに来られました。バルテマイは、イエスさまが通るときに人々に物乞いをぜず、イエスに向かって叫びます。「ダビデの子イエスよ、わたしをあわれんでください!」大声で叫んで、イエスさまのところに近づいて行きました。叫び声が大きく、人々はびっくりしました。人々がこの盲人がイエスさまに近づけないように追い出しました。静かにしろと叱りましたが、バルテマイはものともせずに、より大きく叫びました。 「ダビデの子イエスよ!私をあわれんでください!」と。ダビデの子と呼ばれたのは救うことのできるお方という意味です。バルテマイ神が送られたメシヤ、救い主を呼んでいたのです。イエスさまはこのバルテマイの叫びを聞いて立ち止まります。そして彼を呼びます。イエスさまはどこで立ち止まったのですか?イエスさまにすがる信仰があるところに止まっておられます。バルテマイはイエスさまの声を聞いて上着を置いたまま走っていきます。イエスさまが尋ねられます。「わたしに何をしてほしいのですか。」イエスさまはバルテマイに何が一番重要なのかはご存じです。しかし、本人に尋ねます。バルテマイは躊躇なくに言います。。「先生、目が見えるようにしてください。」イエス様があなたの信仰があなたを救ったと言いながら目を開けてくださいます。バルテマイには新しい世界が開かれました。感動的です。-10:52 そこでイエスは言われた。「さあ、行きなさい。あなたの信仰があなたを救いました。」すると、すぐに彼は見えるようになり、道を進むイエスについて行った。-このバルテマイは、世界を見ることができるようになりました。目を覚ましたその時初めて見たのがイエスさまです。これで、バルテマイの人生の目的と価値が変わりました。イエスさまを見上げます。そして、イエスさまに従っていきます。 このバルテマイの叫びである「主よ、私をあわれんでください」は、2000年間教会の祈りとなりました。教会は集まるたびにギリシャ語で「主よ私をあわれんでください」と祈りました。神様のあわれみを願う心を持って、礼拝を始めました。私はこれは人間が神にささげる最善の祈りだと思います。もしかしたら、自分がかわいそうではないと思っている人がいますか?それそこ盲人です。目があっても、人生の本質は見れない盲人です。自分でかわいそうだと思わない人、神様のあわれみと愛を必要としないと思う人こそが確かにかわいそうな人です。私たちは幸せを追い求め、祝福を望んでいますが、それは、神様があわれんでくださるから受けるものです。神様が照らす光の中で、私たちは幸せになることができます。主は、私たちの叫び声おを聞き、立ち止まります。ぜひ憐れみと慈しみを願う心を持ってイエスさまのお名前を呼ぶ祝福を祈ります。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마가복음10:46-52

오늘도 사랑으로 넘치는 하나님의 사랑 이야기 성경에서 이야기 하나 소개하겠습니다. 신약성경 마가복음입니다. 배경은 여리고라는 동네입니다. 지금은 세계에서 제일 오래된 도시 중 하나로 유명한 곳이지요. 팔레스타인의 사해 바로 위에 있습니다. 그 동네에는 “바디메오”라는 소경이 살고 있었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눈이 보이지 않는 것이 죄 때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바디메오는 사회에서 차별받고 소외되었고 일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거지가 되어서 길가에 앉아서 구걸하는 생활을 해야했습니다. 그러나 눈은 볼 수 없었지만 귀는 잘 들렸습니다. 보이지 않으면 들리는 것은 더 잘 들립니다. 그래서 길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통해서 세상의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는 있었습니다. 어느 날 바디메오의 귀에 예수님이라는 분이 많은 무리들과 함께 자기 동네 앞을 지나간다는 소문이 들렸습니다. 바디메오는 그것을 듣고 어떤 기대감이 있었을 것입니다. 우선 구걸하는 사람은 사람들이 많이 모여야 한 푼이라도 더 받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사람들이 많이 모인다는 것은 수입이 늘어날지도 모른다는 희망적인 것입니다. 그것이 길가에 앉아서 구걸하는 사람들의 일반적인 생각입니다. 아니 사실 구걸하는 사람뿐만 아니지요. 눈도 보이고 귀도 들리고 건강한 모든 사람들이 다 경제적 가치가 있는 곳으로 모여드는 것은 같지 않습니까. 바디메오에게도 동냥받아야 하는 돈은 중요했습니다. 그날 하루의 생존의 문제였을테니까요. 그러나 바디메오는 그 경제적 가치와 그 기대 이상을 보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잘 생각해보십시오. 인간은 다 자신의 궁극적인 필요가 무엇인지 모르고 오직 경제적 가치만을 구합니다. 바디메오는 이미 예수님이 이 여리고라는 동네에 들어오시면서 벌써 두 명의 소경을 고치셨고 악질적으로 돈만 밝히는 여리고의 세무서장 삭개오가 예수님을 믿고 회개했다는 믿기 어려운 말도 이미 들었을 것입니다. 바디메오는 보고 싶었습니다. 어둠을 뚫고 들어오는 빛을 보고 싶었습니다. 빛이 비추어 주지 않으면 시력이 아무리 좋아도 아무 것도 볼 수 없습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본 것은 하나님이 인생의 길에 빛이 비추어주었기 입니다.

드디어 예수님이 여리고에 오셨습니다. 바디메오는 예수님이 지나가실 때 사람들에게 구걸하지 않고 예수님을 향해 소리칩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큰 소리로 외치며 예수님에게로 다가갔습니다. 소리가 커서 사람들이 깜짝 놀랬습니다. 사람들이 이 소경이 예수님에게 나갈 수 없도록 밀어냈습니다. 조용히 하라고 겁을 주었지만 바디메오는 아랑곳하지 않고 더 크게 외쳤습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다윗의 자손이라고 부른 것은 구원하실 수 있는 분이라는 의미입니다. 바디메오와 하나님이 보내신 메시야, 구세주를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바디메오의 외침을 듣고 멈추어 섭니다. 그리고 그를 부르십니다. 예수님은 어디에서 멈추어 서십니까? 예수님에게 바라는 믿음이 있는 곳에 멈추어 서십니다. 예수님의 부르심을 듣고 소경은 겉옷을 두고 그대로 뛰어 나갑니다. 예수님이 물으십니다. 무엇을 해주기 원하느냐. 예수님은 바디메오에게 무엇이 가장 중요한 것인지 아십니다. 그러나 본인에게 물으십니다. 바디메오는 주저함 없이 말합니다. 선생님이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예수님께서 네 믿음이 너를 구원했다고 선포하시면서 소경의 눈을 밝혀 주십니다. 그리고 바디메오에게 새로운 세상이 열렸습니다. 감동적입니다. -10:52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니 저가 곧 보게 되어 예수를 길에서 좇으니라-눈을 떴을 때 처음 본 것이 예수님입니다. 이제 이 바디메오는 세상의 많은 것을 볼 수 있게 되었지만 바디메오의 삶의 목적과 가치가 달라졌습니다. 예수를 바라보게 됩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따라 갑니다. 이 바디메오의 외침인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은 2000년간 교회의 기도가 되었습니다. 교회는 모일 때마다 「주여 나를 불쌍히 여기시옵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 긍휼을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기도를 하고 예배를 시작했던 것입니다. 저는 이것이 인간이 하나님에게 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의 기도라고 생각합니다. 혹시 자신이 불쌍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것이 소경입니다. 눈이 있어도 인생의 본질을 보지 못하는 소경입니다. 스스로 불쌍하다고 느끼지 못하는 사람,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이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불쌍한 사람입니다. 우리는 행복을 추구하고 축복을 원하지만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불쌍히 여겨주셔야만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비추어주시는 빛 안에서 우리는 행복할 수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찾는 소리를 들으시고 멈추어 서십니다. 자비와 긍휼을 바라는 마음으로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