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13:1-11 13:1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13:2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니 13:3 저녁 먹는 중 예수는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자기 손에 맡기신 것과 또 자기가 하나님께로부터 오셨다가 하나님께로 돌아가실 것을 아시고 13:4 저녁 잡수시던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시고 13:5 이에 대야에 물을 담아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그 두르신 수건으로 씻기기를 시작하여 13:6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니 가로되 주여 주께서 내 발을 씻기시나이까 13:7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나의 하는 것을 네가 이제는 알지 못하나 이 후에는 알리라 13:8 베드로가 가로되 내 발을 절대로 씻기지 못하시리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를 씻기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 13:9 시몬 베드로가 가로되 주여 내 발 뿐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겨 주옵소서 13:10 예수께서 가라사대 이미 목욕한 자는 발 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온 몸이 깨끗하니라 너희가 깨끗하나 다는 아니니라 하시니 13:11 이는 자기를 팔 자가 누구인지 아심이라 그러므로 다는 깨끗지 아니하다 하시니라
십자가의 때는 성큼 다가왔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에 곧 닥쳐올 고난을 알고 계셨지만, 제자들은 그때까지도 서열 다툼을 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마지막 만찬 중에 일어나 그런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셨습니다.
갑자기 일어난 민망한 일에 베드로는 거절해 보았지만, 예수님은 오히려 「씻지 않으면 예수님과 상관이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관용구로 다시는 범죄를 안 하겠다는 의지를 말할 때 「손 씻었다」는 표현을 합니다만, 일본어에서는 같은 의미로 「발을 씻었다」고 표현합니다.
예수님은 「몸은 깨끗해졌으니 발만 씻으면 된다」고 하셨습니다. 매일의 삶을 살면 반드시 매일같이 발에 흙먼지가 묻고 더러워집니다. 그러나 그 때 묻은 발, 사람들에게는 부끄럽지만, 예수님에게는 내밀어도 괜찮습니다. 아니, 내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거기서 씻음을 받아야 합니다.
세족식은 교회에서 자주 재현하는 의식이기도 합니다. 목사가 제직들의 발을 씻기고, 주일학교 교사가 아이들의 발을 씻기고, 부부가 서로의 발을 씻기면서 섬기기를 다짐합니다.
그러나 그것에 아무리 마음을 담아보아도 이벤트는 이벤트일 뿐입니다. 서로 발을 씻어주라던 예수님의 말씀은 세족식이라는 행사를 하라는 말씀이 아니고 서로의 종이 되어 살라는 말씀입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성금요일을 영어로 「Good Friday」라고 하고, 그 하루 전 최후의 만찬을 드셨던 목요일은 「Maundy Thursday」라고 부릅니다. 「Maundy」는 세족식이라는 뜻이지만, 그 어원은 라틴어 「mandatum」에서 왔는데 명령, 계명이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신 후 34절의 새 계명을 주신 것에서 나온 이름입니다. 「새 계명은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입니다.
세족식 행사에 참여하고 그것으로 섬겼다고 스스로 감격하는 것은 자기를 위한 일시적 감정일 뿐입니다. 발을 씻겨주신 예수님은 며칠 뒤 그 겸손과 섬김의 완성으로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행사에서 발을 씻어주는 일이야 쉽지만, 삶에서 이웃의 죄를 덮어주고 대신 씻어주고 용서해주는 것은 과연 쉬운 일이겠습니까? 예수님이 나를 사랑해 주신 것 같이 누군가를 사랑하기는 과연 쉬운 일입니까?
최후의 만찬의 세족식을 읽으면서 며칠 전에 읽은 향유 옥합을 깨뜨려 예수님 발에 붓고 머리카락으로 씻었던 마리아가 생각났습니다. 향유 옥합을 드린 것이 마리아라는 실명을 밝히는 것도 요한복음입니다. 그리고 세족식 이야기도 요한복음에서만 나옵니다.
예수님은 향유 사건에 대해서 말씀하시기를 마리아가 예수님 자신의 장례를 예비한 것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이제 예수님의 죽음 곧 십자가의 때는 현실로 다가왔고 예수님은 다시 제자들의 발을 씻기고 계십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시면서 의미심장한 말씀을 하셨는데 「내가 하는 것을 네가 지금은 알지 못하나 이후에는 알리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마리아가 자신의 모든 것으로 예수님의 가셔야 할 십자가의 죽음을 준비한 것처럼 예수님은 제자들의 때 묻은 발을 붙잡고 제자들이 걸어가야 할 각자의 십자가의 죽음을 예비하신 것은 아니겠습니까?
제자들은 다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전하다가 죽임당했습니다. 제자들도 각자 자신의 죽음을 앞둔 날 예수님의 죽음을 앞둔 날, Maundy Thursday을 생각해 냈을 것입니다. 그날 밤에 예수님이 발을 씻어주신 것과 그 의미를 생각해 냈을 겁니다.
향유를 드린 마리아나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이나 복음을 위해 목숨을 드린 제자들이나 다 헌신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것이 믿음의 동역자들만이 서로 공유할 수 있는 서로 사랑함이 아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