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T

신명기4:25-31
4:25 네가 그 땅에서 아들을 낳고 손자를 얻으며 오래 살 때에 만일 스스로 부패하여 무슨 형상의 우상이든지 조각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악을 행함으로 그의 노를 격발하면
4:26 내가 오늘날 천지를 불러 증거를 삼노니 너희가 요단을 건너가서 얻는 땅에서 속히 망할 것이라 너희가 거기서 너희 날이 길지 못하고 전멸될 것이니라
4:27 여호와께서 너희를 열국 중에 흩으실 것이요 여호와께서 너희를 쫓아보내실 그 열국 중에 너희의 남은 수가 많지 못할 것이며
4:28 너희는 거기서 사람의 손으로 만든바 보지도 못하며 듣지도 못하며 먹지도 못하며 냄새도 맡지 못하는 목석의 신들을 섬기리라
4:29 그러나 네가 거기서 네 하나님 여호와를 구하게 되리니 만일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그를 구하면 만나리라
4:30 이 모든 일이 네게 임하여 환난을 당하다가 끝날에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와서 그 말씀을 청종하리니
4:31 네 하나님 여호와는 자비하신 하나님이심이라 그가 너를 버리지 아니하시며 너를 멸하지 아니하시며 네 열조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잊지 아니하시리라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 복을 누리며 살다가도 하나님을 배반하면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그것은 역사적으로 이스라엘이 바베론에게 멸망하여 포로로 끌려가면서 실현됩니다. 모세는 그 상실될 언약적 지위를 회복할 수 있는 방법을 여기에서 미리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회개입니다. 회개는 분명히 인간의 신앙적인 변화의 요구에서 출발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돌아가는 회개라는 것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에 의해 일어나는 은혜의 사건입니다. 회개할 수 있다는 것은 이미 하나님의 은혜가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칼뱅은 회개가 구원의 서정의 하나로서의 의미만이 아니고 이신칭의 즉 죄인을 의롭다 여겨주신 그 구원의 사랑을 지속적으로 확정하고 실제화하는 과정이라고 했습니다.

 

이신칭의를 이해하는 것이 복음의 이해가 아니고 회개를 통한 삶의 방향의 회복되는 것이야말로 지금 여기에 살아있는 복음인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회개는 인간이 주도하는 자기 정화작업이 아니라 하나님의 끝없는 자비입니다. 그래서 넘어지고 자빠지는 인간도 다시 돌아갈 소망과 기회를 얻습니다.

 

예수를 믿으면 눈물이 많아집니다. 다 큰 사람이 자꾸 우는 이유를 스스로도 잘 알지 못하지만, 은혜가 충만하면 눈물이 많아집니다.

 

회개의 영이 임하기 때문입니다. 회개의 영은 자비와 긍휼의 영이어서 작은 것에도 마음이 아프고 미안하고 감사해지기 때문에 자꾸 눈물이 나는 겁니다. 회개의 영에는 하나님의 아픈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회개를 표기한 한자는 신학적으로 탁월한 번역인 것 같습니다. 돌이켜(悔い) 고친다(改め)는 의미입니다. 넋두리가 회개가 아니고 실천적 변화까지 이루어내는 것이 회개입니다.

 

상황의 호전을 위해서 하나님과 거래하는 것은 회개가 아닙니다. 상황을 버리더라도 하나님께로 방향을 돌리는 것이 참된 회개입니다.


신명기의 모든 말씀은 오직 언약을 축으로 이루어집니다. 신명기는 모세 언약이 아브라함 언약을 반대하거나 수정하는 것이 아니라 성취하는 것임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약속을 이어가기 위해서 허약한 인간을 회복시키기 위한 장치는 필요했고 그것이 회개하게 하시는 은혜였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질투하실만하지 않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