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16장 11-18 16:11 우리가 드로아에서 배로 떠나 사모드라게로 직행하여 이튿날 네압볼리로 가고 16:12 거기서 빌립보에 이르니 이는 마게도냐 지방의 첫 성이요 또 로마의 식민지라 이 성에서 수일을 유하다가 16:13 안식일에 우리가 기도할 곳이 있을까 하여 문 밖 강가에 나가 거기 앉아서 모인 여자들에게 말하는데 16:14 두아디라 시에 있는 자색 옷감 장사로서 하나님을 섬기는 루디아라 하는 한 여자가 말을 듣고 있을 때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따르게 하신지라 16:15 그와 그 집이 다 세례를 받고 우리에게 청하여 이르되 만일 나를 주 믿는 자로 알거든 내 집에 들어와 유하라 하고 강권하여 머물게 하니라 16:16 우리가 기도하는 곳에 가다가 점치는 귀신 들린 여종 하나를 만나니 점으로 그 주인들에게 큰 이익을 주는 자라 16:17 그가 바울과 우리를 따라와 소리 질러 이르되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으로서 구원의 길을 너희에게 전하는 자라 하며 16:18 이같이 여러 날을 하는지라 바울이 심히 괴로워하여 돌이켜 그 귀신에게 이르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에게서 나오라 하니 귀신이 즉시 나오니라
바울 일행은 마침내 마게도냐 지방의 빌립보로 들어가게 됩니다. 그 곳에서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복음을 듣고 있던 루디아의 마음을 열어 세례를 받게 하시고, 바울 일행을 섬길 마음을 허락하십니다. 이것은 바울의 능력도, 루디아의 능력도 아닌, 순전히 복음의 능력으로 인해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루디아에 이어, 바울 일행은 귀신 들린 여종을 만나게 됩니다. 복음서에 등장한 귀신들이 그러하였듯, 여종에게 들린 귀신 역시 바울 일행과 함께 하고 계시는 그리스도의 존재를 알아 챘습니다. 그 귀신이 바울 일행을 쫓아다니며 며칠간 선포하였던 말은, 얼핏 보기에는 우리가 알고 있는 복음과 전혀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 귀신이 외치던 말은 그리스도의 복음과는 전혀 다른, 당시의 다신교 문화 안에서는 이해하기 어렵고 오해의 소지를 만들기만 하는, 바울 일행의 전도 활동을 방해하는 활동일 뿐이었습니다. 언어의 능력은 대단합니다. 같은 단어를 사용하여도 말하는 사람에 따라, 문화에 따라 그 단어의 의미는 완전히 달라집니다. 귀신이 외치는 말은 얼핏 보기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전하는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귀신이 외치던 소리와, 바울이 전하던 복음은 전혀 다른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전하는 복음은 어떤 복음일까요. 그럴듯하게 들리지만, 실상은 전혀 다른 것을 전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반대로, 복음을 직접적으로 표현하지 않더라도, 우리의 삶을 통해 누군가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발견할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말하는 복음이, 살아가는 모습이 그리스도의 진정한 복음을 담아내는 모습이 되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