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T

고린도전서 15:20~34
15:20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 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15:21 사망이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15:22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15:23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그에게 붙은 자요
15:24 그 후에는 나중이니 저가 모든 정사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라
15:25 저가 모든 원수를 그 발아래 둘 때까지 불가불 왕노릇 하시리니
15:26 맨 나중에 멸망 받을 원수는 사망이니라
15:27 만물을 저의 발아래 두셨다 하셨으니 만물을 아래 둔다 말씀하실 때에 만물을 저의 아래 두신 이가 그 중에 들지 아니한 것이 분명하도다
15:28 만물을 저에게 복종하게 하신 때에는 아들 자신도 그 때에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신 이에게 복종케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만유의 주로서 만유 안에 계시려 하심이라
15:29 만일 죽은 자들이 도무지 다시 살지 못하면 죽은 자들을 위하여 세례 받는 자들이 무엇을 하겠느냐 어찌하여 저희를 위하여 세례를 받느뇨
15:30 또 어찌하여 우리가 때마다 위험을 무릅쓰리요
15:31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서 가진바 너희에게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15:32 내가 범인처럼 에베소에서 맹수로 더불어 싸웠으면 내게 무슨 유익이 있느뇨 죽은 자가 다시 살지 못할 것이면 내일 죽을터이니 먹고 마시자 하리라
15:33 속지 말라 악한 동무들은 선한 행실을 더럽히나니
15:34 깨어 의를 행하고 죄를 짓지 말라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가 있기로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기 위하여 말하노라

 

바울이 부활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은 고린도교회가 교회의 기둥처럼 붙들고 있어야 할 부활에 대한 이해와 믿음이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지적되어 온 고린도교회의 윤리적 문제, 성도들 간의 관계의 문제는 부활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것을 믿지 않는 것에서 나온 결과였습니다. 신앙이 없으니 문제는 끊임없이 발생합니다. 교회와 성도는 매일 있어야 할 자리로 돌아가야 하고 자신이 믿는 것이 무엇인지 그 진위를 점검해야 합니다. 그래서 31절에서 「바을은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 했습니다. 매일같이 자신을 죽이니 매일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부활합니다. 믿는 것이 있어서 죽을 수 있는 것입니다. 30절에 「어찌하여 우리가 때마다 위험을 무릅쓰리요」을 영어에서는 항상(every hour)이라고 번역했습니다. 매시간 위험을 무릎 쓸 수 있다는 것은 믿는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위험 속에서도 헌신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에게 있어서 믿음의 열정을 자랑할 필요가 없는 것은 자신의 헌신의 동기, 즉 믿음은 죽음에서 살리실 부활을 믿는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은 부활에 대한 중요한 신학적 정보를 제공하고 있습니다만 사실 바울은 부활이라는 과목을 강의하고 끝내려는 목적이 아닙니다. 부활의 신앙이 없는 성도들의 삶의 자세를 지적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부활의 신앙이 없으므로 세상에 속아 교회가 어지러워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33절 이하의 책망이 이어집니다. 「속지 말라 악한 동무들은 선한 행실을 더럽히나니 깨어 의를 행하고 죄를 짓지 말라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가 있기로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기 위하여 말하노라 33,34」 행실을 바로잡을 문제가 아니고 먼저 믿는 것을 분명하게 바로잡아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결국에 행실을 바로잡게 될 것입니다. 가치가 바뀌면 삶은 바뀌기 때문입니다.「무엇을 믿는가」라는 것이 각자의 삶에서 드러나야 합니다. 부활이라는 신앙의 뿌리가 없는데 신앙의 열매를 맺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_9HJ_6v0RD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