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T

고린도후서 10:12~18
10:12 우리가 어떤 자기를 칭찬하는 자로 더불어 감히 짝하며 비교할 수 없노라 그러나 저희가 자기로서 자기를 헤아리고 자기로서 자기를 비교하니 지혜가 없도다
10:13 그러나 우리는 분량 밖의 자랑을 하지않고 오직 하나님이 우리에게 분량으로 나눠 주신 그 분량의 한계를 따라 하노니 곧 너희에게까지 이른 것이라
10:14 우리가 너희에게 미치지 못할 자로서 스스로 지나쳐 나아간 것이 아니요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너희에게까지 이른 것이라
10:15 우리는 남의 수고를 가지고 분량 밖에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 믿음이 더 할수록 우리의 한계를 따라 너희 가운데서 더욱 위대하여지기를 바라노라
10:16 이는 남의 한계 안에 예비한 것으로 자랑하지 아니하고 너희 지경을 넘어 복음을 전하려 함이라
10:17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할지니라
10:18 옳다 인정함을 받는 자는 자기를 칭찬하는 자가 아니요 오직 주께서 칭찬하시는 자니라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할지니라17」는 말씀은 고린도전서에도 나옵니다만 바울이 예레미야 9장을 인용한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지혜로운 자는 그 지혜를 자랑치 말라 용사는 그 용맹을 자랑치 말라 부자는 그 부함을 자랑치 말라 자랑하는 자는 이것으로 자랑할지니 곧 명철하여 나를 아는 것과 나 여호와는 인애와 공평과 정직을 땅에 행하는 자인줄 깨닫는 것이라 나는 이 일을 기뻐하노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9:23,24」

 

예레미야와 바울의 책망은 교회가 하나님에 대한 지식 안에서 가치를 찾지 못하고 세상의 가치를 교회로 가지고 들어와서 자랑하는 것에 대한 것입니다. 세상에서 자랑할만 한 것이 있다면 그것도 자랑은 자랑일 것입니다. 세상 것이라고 해서 무가치하다고 폄훼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것이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생각의 가난함입니다. 그것이 바울이 고린도전서 3장에서 말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 아이」입니다.

고린도교회는 웅변을 잘하고 이력이 화려하고 외모가 세련된 사역자를 선호했었나 봅니다. 예루살렘 교회의 추천서가 없다는 것을 트집 잡은 것을 보니 출신 신학교와 박사학위와 같은 것을 요구했나 봅니다. 수요는 공급을 낳습니다. 한국 교회는 고린도교회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습니다. 교회 안에서조차 그것을 자랑삼으니 교회가 세상의 아류가 됩니다.

 

바울이 자랑할 것이 없어서 자랑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겸손한 척하려고 참는 것도 아닙니다. 바울에게 있어서 이력서에 써넣는 것들이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6:14」라고 했습니다.

 

바울이 인용한 예레미야의 의미를 찾아오면 성도가 자랑할 것은 「명철하여 나를 아는 것과 나 여호와는 인애와 공평과 정직을 땅에 행하는 자인줄 깨닫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높아지기 위해서 자비하지 않고 공정하지 않고 정직하지 않게 살아온 사람들의 이력서는 자랑이 되지 않습니다. 보이는 곳, 드러나는 곳에서 목소리를 크게 내는 사람이 아니고 낮은 곳에서 하나님의 가치를 가지고 섬기는 사람이 자랑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 형제자매들을 주 안에서 마음껏 자랑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H2AEkRaYfu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