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T

고린도후서 1:23~2:11
1:23 내가 내 영혼을 두고 하나님을 불러 증거하시게 하노니 다시 고린도에 가지 아니한 것은 너희를 아끼려 함이라
1:24 우리가 너희 믿음을 주관하려는 것이 아니요 오직 너희 기쁨을 돕는 자가 되려 함이니 이는 너희가 믿음에 섰음이라
2:1 내가 다시 근심으로 너희에게 나아가지 않기로 스스로 결단하였노니
2:2 내가 너희를 근심하게 하면 나의 근심하게 한 자 밖에 나를 기쁘게 하는 자가 누구냐
2:3 내가 이같이 쓴 것은 내가 갈 때에 마땅히 나를 기쁘게 할 자로부터 도리어 근심을 얻을까 염려함이요 또 너희 무리를 대하여 나의 기쁨이 너희 무리의 기쁨인줄 확신함이로라
2:4 내가 큰 환난과 애통한 마음이 있어 많은 눈물로 너희에게 썼노니 이는 너희로 근심하게 하려 한것이 아니요 오직 내가 너희를 향하여 넘치는 사랑이 있음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함이라
2:5 근심하게 한 자가 있었을지라도 나를 근심하게 한 것이 아니요 어느 정도 너희 무리를 근심하게 한 것이니 어느 정도라 함은 내가 너무 심하게 하지 아니하려 함이라
2:6 이러한 사람이 많은 사람에게서 벌 받은 것이 족하도다
2:7 그런즉 너희는 차라리 저를 용서하고 위로할 것이니 저가 너무 많은 근심에 잠길까 두려워하노라
2:8 그러므로 너희를 권하노니 사랑을 저희에게 나타내라
2:9 너희가 범사에 순종하는지 그 증거를 알고자하여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썼노라
2:10 너희가 무슨 일이든지 뉘게 용서하면 나도 그리하고 내가 만일 용서한 일이 있으면 용서한 그것은 너희를 위하여 그리스도 앞에서 한 것이니
2:11 이는 우리로 사단에게 속지 않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그 궤계를 알지 못하는 바가 아니로라

 

고린도교회의 문제가 일단락되는 상황에서 바울은 고린도교회 방문할 기회를 미룹니다. 직접 고린도로 가서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빌립보와 마케도냐 사이에게 노심초사하면서 디도를 기다렸습니다. 바울은 디도를 통해서 문제가 해결되었음을 듣고 나서도 고린도 방문을 다시 연기합니다. 문제가 있을 때 해결책을 가지고 갔으면 좋았을 것이고 불신의 문제가 해결되었으니 직접 가서 문제를 깔금하게 처리하면 좋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고린도 방문을 하지 않고 연기합니다.

 

바울은 자신에 대한 불신과 반목으로 갈등을 일으켰던 고린도교회를 방문하는 것이 오히려 더 많은 긴장감을 일으킬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내가 다시 근심으로 너희에게 나아가지 않기로 스스로 결단하였노니 내가 너희를 근심하게 하면 나의 근심하게 한 자 밖에 나를 기쁘게 하는 자가 누구냐 1,2」그렇게 되면 그런 것을 기뻐할 사람은 여전히 바울을 힘들게 했던 사람들일 것입니다.

 

바울이 고민하고 힘들어했던 것은 일부의 사람들이 바울을 신뢰하지 않는 문제가 아니고 교회 공동체의 일치와 안정을 위한 것입니다. 바울은 고린도교회에 등장하여 반대자를 숙청하고 군림하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을 것입니다. 바울 자신이 없더라도 공동체가 해결할 수 있다면 더 좋은 것입니다. 목사의 권위가 아니라 하나님의 교회와 성도의 모임의 권위로 그들을 징계해야 했습니다. 징계가 중요한 것은 공동체의 분별력과 책임감을 드러내고 회개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통과해야만 성숙한 공동체는 형제를 용서할 수 있을 것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Bb6gXFF_Px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