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T

누가복음 12장 49~59
12:49 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노니 이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원하리요
12:50 나는 받을 세례가 있으니 그 이루기까지 나의 답답함이 어떠하겠느냐
12:51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려고 온줄로 아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도리어 분쟁케 하려 함이로라
12:52 이 후부터 한 집에 다섯 사람이 있어 분쟁하되 셋이 둘과, 둘이 셋과 하리니
12:53 아비가 아들과, 아들이 아비와, 어미가 딸과, 딸이 어미와, 시어미가 며느리와, 며느리가 시어미와 분쟁하리라 하시니라
12:54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구름이 서에서 일어남을 보면 곧 말하기를 소나기가 오리라 하나니 과연 그러하고
12:55 남풍이 붊을 보면 말하기를 심히 더우리라 하나니 과연 그러하니라
12:56 외식하는 자여 너희가 천지의 기상은 분변할 줄을 알면서 어찌 이 시대는 분변치 못하느냐
12:57 또 어찌하여 옳은 것을 스스로 판단치 아니하느냐
12:58 네가 너를 고소할 자와 함께 법관에게 갈 때에 길에서 화해하기를 힘쓰라 저가 너를 재판장에게 끌어가고 재판장이 너를 관속에게 넘겨주어 관속이 옥에 가둘까 염려하라
12:59 네게 이르노니 호리라도 남김이 없이 갚지 아니하여서는 결단코 저기서 나오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에베소서에는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2:14」고 했고 골로새서에서는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을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케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1:20 」고 했습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화평을 주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하나님과의 수직적 관계를 회복하게 한 복음은 다시 삶에서 수평적 화목을 이루어가게 할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49절 이하에서는 예수님은 「화평이 아니라 분쟁케 하며 집안 가족들이 서로 싸울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이 받을 세례가 있다고 하셨는데 그 세례는 예수님이 지실 십자가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구속을 이루시고 나면 하나님은 택하신 사람들에게 성령을 주실 것이고 성령이 임한 후에는 불이 붙을 것이고 그것은 세상과 갈등하게 될 것입니다.

 

갈등은 가장 가까운 가족에서부터 일어납니다. 아비가 자식을 어미와 딸이 며느리와 시어미가 싸운다고 했습니다. 당황스러운 말씀이지만 복음이 분명하다면 불가피하게 일차적으로 갈등을 초래할 것입니다. 일례로 유교적인 한국 사회에 기독교로 개종한 한 남자가 자신의 부모의 신주단지를 버렸습니다. 그것을 본 아내는 시부모의 신주단지를 버리는 남편과 갈등하다가 두려움과 원통함으로 자살해 버렸고 당시 그 사건은 사회에 큰 화제가 되었습니다.

 

이해가 부족하여 일어난 안타까운 사건입니다. 남편이 열정보다 인내를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면 안타까운 사고를 막을 수 있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세계관이 충돌할 때 갈등이 일어나는 것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 일차적으로 일어날 수밖에 없는 불화와 갈등을 화평과 화목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복음을 가진 사람의 믿음과 인내가 필요합니다.

 

가족과 세상이 빨리 화목 해주지 않는 이유는 진짜인지 가짜인지를 확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화평이라고 말한 에베소서와 골로새서도 바울이 쓴 것이지만 유대교와 로마의 다신교 문화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것은 죽을 위기를 맞아야 하는 충돌과 갈등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진정성이 교회를 낳았습니다.

 

요즘은 기독교인이 아니어도 제사 지내지 않는 가정이 많아졌습니다. 형제들이 모이지 않기 때문에 제사를 지내지 않기도 하고 해외여행을 가기 위해서 제사를 생략하기도 합니다. 제사 지내지 않기 위해서 목숨을 걸어야 했던 시대를 생각하면 대수롭지 않은 이유로 그것을 버리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제사상을 차리고 절하는 문화는 점점 더 사라져 갈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절하지 않는다고 혼내켰던 것도 제사를 지키려고 했던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오히려 가족의 유대와 조상에 대한 감사는 유지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저의 가족은 제가 예수님을 믿고 난 후 10년 후에 한 명씩 믿기 시작하여 20년이 걸렸습니다. 아직 여전히 믿지 않는 가족도 있습니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문중이 관리하는 선산에 부모님을 모셨는데 유교적으로 엄격한 문중에서 저에게 먼저 말하기를 비석에 십자가를 새겨 넣어도 좋다고 했습니다. 궁극적으로 화목하게 하기 위한 갈등입니다. 거절당하는 것, 갈등하는 것은 여전히 두려운 일이지만 갈등 없이 인내 없이 화목하려는 것은 혼합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PfD9td-WqU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