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T

누가복음 21장 1~9
21:1 예수께서 눈을 들어 부자들이 연보 궤에 헌금 넣는 것을 보시고
21:2 또 어떤 가난한 과부의 두 렙돈 넣는 것을 보시고
21:3 가라사대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가난한 과부가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21:4 저들은 그 풍족한 중에서 헌금을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구차한 중에서 자기의 있는바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21:5 어떤 사람들이 성전을 가리켜 그 미석과 헌물로 꾸민 것을 말하매 예수께서 가라사대
21:6 너희 보는 이것들이 날이 이르면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리우리라
21:7 저희가 물어 가로되 선생님이여 그러면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이런 일이 이루려 할 때에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21:8 가라사대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와서 이르되 내가 그로라 하며 때가 가까왔다 하겠으나 저희를 좇지 말라
21:9 난리와 소란의 소문을 들을 때에 두려워 말라 이 일이 먼저 있어야 하되 끝은 곧 되지 아니하니라

 

오늘 본문은 「과부의 두 랩돈」 이야기입니다. 부자와 과부가 다 헌금을 드렸는데 부자는 많은 돈 중에 일정 금액을 정하여 드렸고 과부는 전 재산인 두 렙돈을 드렸습니다. 부자가 얼마를 드렸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상대적 가치로 전 재산 두 렙돈을 드린 과부의 헌금에 주목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헌금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것은 욕심의 문제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금액의 절대적 가치라는 것이 있기 때문에 금액이 너무 적으면 그 안에 욕심이 일할 여지가 없습니다. 예를 들어 만 원 가진 사람이 천 원의 십일조 헌금을 하기는 어렵지 않지만, 십억 원 가진 사람이 일 억의 십일조 헌금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물론 가난한 과부의 두 렙돈의 헌신은 아주 소중한 것입니다. 그러나 부자가 자신의 재산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적게 냈다고 해서 비난받을 일은 아닙니다. 문맥을 따라 예수님이 말씀하신 의도를 찾아야 합니다. 어제 본문 20장의 마지막은 거만하고 부패한 종교 지도자들과 그것에게 피해를 당하는 가난한 사람들의 이야기로 끝납니다. 어제의 본문 마지막은 이렇습니다. 「긴 옷을 입고 다니는 것을 원하며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회당의 상좌와 잔치의 상석을 좋아하는 서기관들을 삼가라 저희는 과부의 가산을 삼키며 외식으로 길게 기도하니 그 받는 판결이 더욱 중하리라 하시니라 20:46,47」

 

그리고 오늘 21장에서 그 이야기를 이어서 하고 있습니다. 당시 바리새인과 사두개인 등의 정치적이고 종교적인 기득권자들은 가난한 사람들의 것을 악의적으로 또는 구조적으로 착취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과부는 가난했고 그런 중에도 남은 것을 하나님을 위해서 드렸습니다. 예수님은 그것에 대해서 사회적으로 고발하고 종교적인 책망을 하신 것이고 그것을 듣던 기득권자들은 21장 5절에서 자본의 중요성에 대해서 말합니다. 「어떤 사람들이 성전을 가리켜 그 미석과 헌물로 꾸민 것을 말하매 21:5」즉 「우리가 많은 헌금을 냈기 때문에 저 큰 성전을 화려하게 지을 수 있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두 렙돈 따위를 가지고 왈가왈부하지 마시오. 그런 것으로 이렇게 큰 하나님의 일이 되지 않는다는 말이오」라는 항변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종교 건물은 곧 가루가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실제로 가루가 되었습습니다. 사람들은 종교를 만들고 하나님은 그것을 부수십니다. 인간의 헌신으로 세워졌다고 생각하는 건물은 인간이 허망해질 때 함께 무너질 것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TDXe3j2zD5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