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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1장 26-32절
1:26 이를 인하여 하나님께서 저희를 부끄러운 욕심에 내어 버려 두셨으니 곧 저희 여인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1:27 이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인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 일듯하매 남자가 남자로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저희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 자신에 받았느니라
1:28 또한 저희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 버려두사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1:29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1:30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의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1:31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
1:32 저희가 이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하다고 하나님의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 일을 행하는 자를 옳다 하느니라

 


창세기 1장에서 하나님은 세계를 창조하시고 그것을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것이 질서입니다. 모든 만물에는 창조의 질서 안에서 각각의 역할이 주어져 있습니다. 그것은 인간이 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새는 하늘을 날고 물고기는 바다를 헤엄칩니다. 해와 달과 별도 각자의 위치를 지키며 움직입니다. 무질서는 곧 이탈이며 파괴입니다. 원칙과 기준을 끌어내려 위치와 역할을 뒤집어버리는 것이 불순종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이 되려고 하고 남자는 여자가 되고 여자는 남자가 되려 합니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피조물은 창조의 목적에 따라 각자의 위치에 있을 때 아름답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청지기로 임명한 인간에게 창조 질서의 유지를 요구하십니다. 인간은 창조 질서를 분별하고 그것에 순종해야 합니다. 오늘 아침기도회의 설교는 「계명을 지키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지키거니와 그 행실을 삼가지 아니하는 자는 죽으리라 잠언 19:16」 였습니다. 지키는 것을 통해서 자유가 주어집니다. 원칙과 기준 없이 살면 바람이 불 때마다 휩쓸려 다녀야 합니다. 계명을 지키는 것은 곧 자기를 지키는 것입니다. 지킬 것을 지키는 것이야말로 평안을 주는 자유입니다.

 

세상의 윤리는 시대의 조류를 따라 바뀝니다. 세상의 법은 간통이 죄였다가도 성적 자기 결정권이 되기도 하고 아기의 살 권리를 위해 낙태가 금지되었다가도 다시 어머니의 살 권리를 위해 낙태를 허용되기도 합니다. 세상은 시대에 따라 생명의 윤리가 가변적입니다. 법을 바꾸면 기준이 바뀝니다. 헌법을 바꾸면 원칙이 바뀝니다. 세태와 여론에 따라 생명윤리의 해석이 달라집니다. 무엇이 원칙인지 알 수 없습니다. 그것은 세상이 결코 바뀔 수 없는 상위의 원칙을 잃어버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그런 위험 가운데서 하나님은 인간이 타락하도록 내버려 두십니다. 그것을 기계적으로 제어하지 않으신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호세아서에서 「이스라엘아 네가 패망하였나니 이는 너를 도와주는 나를 대적함이니라 호 13:9 」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도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아는 지식과 그것을 지키려는 의지가 없이는 질서를 유지할 수 없습니다. 원칙을 제시하고 그것을 관철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세상은 타락과 욕심을 법제화해 갈 것입니다.

 

그리스 로마에는 동성애가 일반적이었고 오히려 미화되어 있었습니다. 철학하던 시대이니 어른들의 사랑에 대해서는 「덕과 진리 사이에 있는 선에 대한 사랑」이라고 생각하여 플라톤의 이름을 빌려와 「플라토닉 러브」라고 했지만, 육체적 사랑은 동성애 중에서도 소년애 즉 미성년자와의 동성애를 일반화했을 정도로 동성애가 횡행했습니다. 미화되고 일반화되었다는 것은 수치를 숨겼다는 말입니다. 부끄럽지도 않게 행해지고 있었습니다. 수치심을 스스로 버리고 악을 행하는 것을 즐거워하고 다른 사람들이 그런 악을 행하는 것에도 동의하고 인정하고 지지하는 것, 즉 죄의 문화를 만들어 버리는 것이 불순종의 극치인 것입니다.

 

바울은 헬라 세계의 고매한 철학의 이면에 웅크린 탐욕적 변태성에 대하여 하나님의 질서가 아님을 직접적으로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은 마음 안에 있는 악한 욕망을 더러움에 내버려 둘 때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 수군수군하는 자, 비방하는 자, 하나님의 미워하시는 자, 능욕하는 자, 교만한 자, 자랑하는 자, 악을 도모하는 자, 부모를 거역하는 자,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 무정한 자, 무자비한 자」를 양산하는 사회를 만듭니다.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를 칼빈은 「They refused to have God in their knowledge (그들은 하나님에 대한 지식 가지기를 거부했다) 」고 번역했습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질서를 알 수 있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알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 (Knowing God)』을 쓴 제임스 패커가 지난 17일 소천했습니다. 그는 말년에 실명했으나 그것도 하나님의 뜻이고 복이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실명했으나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뚜렷했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 안에서 하나님의 질서를 알 수 있고 그것을 지켜가려는 인간만 온전하게 행복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