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T

빌립보서 3:1~9
3:1 종말로 나의 형제들아 주 안에서 기뻐하라 너희에게 같은 말을 쓰는 것이 내게는 수고로움이 없고 너희에게는 안전하니라
3:2 개들을 삼가고 행악하는 자들을 삼가고 손할례당을 삼가라
3:3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우리가 곧 할례당이라
3:4 그러나 나도 육체를 신뢰할만하니 만일 누구든지 다른이가 육체를 신뢰할 것이 있는 줄로 생각하면 나는 더욱 그러하리니
3:5 내가 팔일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의 족속이요 베냐민의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3:6 열심으로는 교회를 핍박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로라
3:7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3:8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3:9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

 

1절의 「종말로」라는 것은 마지막으로라는 말입니다. 바울이 마지막으로 강조해서 결론적으로 하고 싶다는 말인데 그것은 「주 안에서 기뻐하라」는 것입니다. 바울의 이 간절한 당부의 말을 새겨들어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해서든지 복음의 감격을 현재적 기쁨으로 누려야만 합니다. 그것만이 구원의 증명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바울 자신은 그것을 아무리 강조하여 반복하여도 지나치지 않다고 했고 빌립보 성도들에게도 그것이 가장 안전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구원의 감격을 현재적 기쁨을 누리는 것, 그것을 위한 하나의 장애물을 제거하기 위해서 바울은 할례 문제를 언급합니다. 유대인 출신의 그리스도인들, 좀 더 구체적으로 분류하자면 복음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유대 종교의 우월론자, 유대 출신의 기득권자, 종교적 계급주의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비유대인들에게 할례를 요구했습니다. 바울은 그것에 화가 나 있었습니다. 복음의 보편성을 짓밟는 무식한 소리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들을 향해서 「개」와 「행악」이라는 말을 동원했습니다. 나는 그런 바울이 좋습니다.

 

사실 바울 자신은 누구보다도 높은 계급적 지위와 기득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의 고상함에 비하면 다른 모든 것은 배설물이라고 고백했습니다. 바울의 언어가 예쁘고 단정해 보이지 않지만 무지와 위선을 때려 부수는 망치가 예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물론 믿음을 위해서는 지식이 필요하고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많이 안다고 해서 잘 믿는 것은 아닙니다. 믿지 않으면 들어도 들리지 않고 보아도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신학은 학문적 유희를 위한 것이 아니고 교회를 위한 것이어야 합니다. 신학을 공부한 사람이나 신학자의 지식이 반드시 믿음과 비례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복음은 자기 자신만 잘 관찰할 수 있어도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는 보편적인 것입니다.

 

두려운 것은 어쩌면 오랫동안 교회의 구들목을 차지하고 있던 사람들이 유대주의자들의 역할을 이어받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온갖 감투와 원로와 명예 등의 이름을 달고 계급과 기득권을 유지합니다. 퇴장할 줄 모르는 사람들, 가장 헌신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헌신자의 배지를 달고 삽니다. 교회는 믿음이 없어서 망하는 것이 아니고 믿음이 있다고 하는 사람들의 계급의식과 특권의식 때문에 망할 것입니다. 자신은 목사기에 또는 장로이기에 또는 유력자이기에 어떤 특별한 자리에서 특별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바울의 엄한 책망을 들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 것들에 숨 막혀 질식하는 것은 복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