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T

사무엘상 9:1~14
9:1 베냐민 지파에 기스라 이름하는 유력한 사람이 있으니 그는 아비엘의 아들이요 스롤의 손자요 베고랏의 증손이요 아비아의 현손이라 베냐민 사람이더라
9:2 기스가 아들이 있으니 그 이름은 사울이요 준수한 소년이라 이스라엘 자손 중에 그보다 더 준수한 자가 없고 키는 모든 백성보다 어깨 위는 더하더라
9:3 사울의 아비 기스가 암나귀들을 잃고 그 아들 사울에게 이르되 너는 한 사환을 데리고 일어나 가서 암나귀들을 찾으라 하매
9:4 그가 에브라임 산지와 살리사 땅으로 두루 다니되 찾지 못하고 사알림 땅으로 두루 다니되 없고 베냐민 사람의 땅으로 두루 다니되 찾지 못하니라
9:5 그들이 숩 땅에 이른 때에 사울이 함께 하는 사환에게 이르되 돌아가자 내 부친이 암나귀 생각은 고사하고 우리를 위하여 걱정하실까 두려워하노라
9:6 대답하되 보소서 이 성에 하나님의 사람이 있는데 존중히 여김을 받는 사람이라 그가 말한 것은 반드시 다 응하나니 그리로 가사이다 그가 혹 우리의 갈 길을 가르칠까 하나이다
9:7 사울이 그 사환에게 이르되 우리가 가면 그 사람에게 무엇을 드리겠느냐 우리 그릇에 식물이 다하였으니 하나님의 사람에게 드릴 예물이 없도다 무엇이 있느냐
9:8 사환이 사울에게 다시 대답하여 가로되 보소서 내 손에 은 한 세겔의 사분 일이 있으니 하나님의 사람에게 드려 우리 길을 가르치게 하겠나이다
9:9 (옛적 이스라엘에 사람이 하나님께 가서 물으려 하면 말하기를 선견자에게로 가자 하였으니 지금 선지자라 하는 자를 옛적에는 선견자라 일컬었더라)
9:10 사울이 그 사환에게 이르되 네 말이 옳다 가자 하고 그들이 하나님의 사람 있는 성으로 가니라
9:11 그들이 성을 향한 비탈길로 올라가다가 물 길러 나오는 소녀들을 만나 그들에게 묻되 선견자가 여기 있느냐
9:12 그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있나이다 보소서 그가 당신보다 앞섰으니 빨리 가소서 백성이 오늘 산당에서 제사를 드리므로 그가 오늘 성에 들어오셨나이다
9:13 당신들이 성으로 들어가면 그가 먹으러 산당에 올라가기 전에 곧 만나리이다 그가 오기 전에는 백성이 먹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가 제물을 축사한 후에야 청함을 받은 자가 먹음이라 그러므로 지금 올라가소서 금시로 만나리이다 하는지라
9:14 그들이 성읍으로 올라가서 그리로 들어갈 때에 사무엘이 마침 산당으로 올라가려고 마주 나오더라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요구대로 왕을 주시기로 허락하신 후 9장에서는 청년 사울이 등장합니다. 본문이 묘사하고 있는 사울의 이미지를 다시 말하자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왕으로 요구하고 있던 사람의 이미지일 것입니다. 「이스라엘 자손 중에 그보다 더 준수한 자가 없고 키는 모든 백성보다 어깨 위는 더하더라 2」 청년 사울은 이스라엘에서 가장 잘생긴「얼짱」이었고 키가 보통 사람들의 머리 하나만큼 크다고 했으니 「몸짱」입니다. 게다가 1절을 보니 유력한 가정에서 유복하게 자란 「금수저」였습니다. 여성들에게는 이른바 백마 탄 왕자님과 같은 「킹카」, 키 작고 배 나온 남자들에게는「넘사벽」, 백성들이 보기에는 왕이 될 만한 「대박」이었습니다.

 

사울의 결말을 알고 있으니 9장에서 왜 이런 묘사를 하고 있는지를 알 것 같습니다. 하나님이 사울에 대해서 더 참을 수 없게 되었을 때 사무엘은 다음 왕을 찾아 이새의 집에 갔는데 거기서 이새의 큰아들 즉 다윗의 큰형의 훤칠함을 보고 그가 왕이 될 사람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사무엘에게 말씀하시기를「그 용모와 신장을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나의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16:7」이 문장을 읽는 사람들은 하나님이「그를 버렸노라」고 하셨을 때 「그」를 다윗의 큰형 엘리압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사울을 말씀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들의 공통점은 외모가 출중하다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외모라고 할 때는 생김새를 말하기도 하지만 형식이나 겉치레를 말하기도 합니다. 그것으로 사람을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본문을 읽어보면 사울은 그저 순수한 한 청년으로 나오는 것 같지만 저자는 여기저기 사울에 대한 디테일을 숨겨놓은 것 같습니다. 본문은 사무엘을 만나기까지 하나의 이야기, 영화로 하면 하나의 씬(Scene)입니다. 그런데 이 장면에서 사울이 제대로 하는 것이 없습니다. 찾으러 나간 나귀를 찾지도 못하고 먹을 것이 없는데 주인인 사울은 대책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람 즉 사무엘을 만나면 인사를 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것도 종이 가지고 있던 돈으로 합니다. 모든 판단과 결단은 종이 합니다. 종이 더 똑똑하고 민첩해 보입니다. 사울이 한 것이라고는 「이제 나귀 그만 찾고 집에 가자」고 말한 것과 종에게 「가진 돈 좀 있니?」가 전부입니다. 여기서부터 사울을 미워할 생각은 없습니다. 사울도 순수한 때가 있었고 한 때 하나님의 손에 사용된 사람임에 분명합니다. 그러나 전체적 맥락에서 보면 이스라엘은 왕을 달라고 한 것이 실수였고 그 왕이 사울이었다는 것 또한 불행이었습니다. 사울은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보는가라는 인기 집착에 묶여 미쳐버리고 망한 사람입니다. 그만큼 잘 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입니다. 속는 것이 제일 억울합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것에 속지 맙시다. 사람 보는 눈 제대로 가지고 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