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T

시편 시편 37:27~40
37:27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라 그리하면 영영히 거하리니
37:28 여호와께서 공의를 사랑하시고 그 성도를 버리지 아니하심이로다 저희는 영영히 보호를 받으나 악인의 자손은 끊어지리로다
37:29 의인이 땅을 차지함이여 거기 영영히 거하리로다
37:30 의인의 입은 지혜를 말하고 그 혀는 공의를 이르며
37:31 그 마음에는 하나님의 법이 있으니 그 걸음에 실족함이 없으리로다
37:32 악인이 의인을 엿보아 살해할 기회를 찾으나
37:33 여호와는 저를 그 손에 버려두지 아니하시고 재판 때에도 정죄치 아니하시리로다
37:34 여호와를 바라고 그 도를 지키라 그리하면 너를 들어 땅을 차지 하게 하실 것이라 악인이 끊어질 때에 네가 목도하리로다
37:35 내가 악인의 큰 세력을 본즉 그 본토에 선 푸른 나무의 무성함 같으나
37:36 사람이 지날 때에 저가 없어졌으니 내가 찾아도 발견치 못하였도다
37:37 완전한 사람을 살피고 정직한 자를 볼지어다 화평한 자의 결국은 평안이로다
37:38 범죄자들은 함께 멸망하리니 악인의 결국은 끊어질 것이나
37:39 의인의 구원은 여호와께 있으니 그는 환난 때에 저희 산성이시로다
37:40 여호와께서 저희를 도와 건지시되 악인에게서 건져 구원하심은 그를 의지한 연고로다

 

다윗은 강한 어조로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라고 말합니다. 37편에서 선과 악은 명확하게 대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자기 자신에 있어서 선과 악의 이해가 대단히 주관적이고 추상적이라는 것에 있습니다. 선과 악이 무엇인지를 자기합리화 안에 뒤섞어서는 안 됩니다. 내가 선이고 남이 악이라는 논리로는 영혼이 혼란스러워 할 뿐입니다. 제 3자의 시선 아니, 하나님의 관점에서 나는 어디에 속하는가를 냉정하게 판단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능력이 없으면 하나님 안에 있는 것이 아니고 내 안에 하나님 비슷한 것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런 경우에 종교는 세상과 대화하지 못하고 오히려 칼이 되고 폭력이 될 것입니다. 대화가 통하지 않는 이기적이고 무례하고 폭력적인 종교…타락한 종교가 스스로 선이라고 여기는 한 그 종교의 유일한 소망은 다윗이 분노하여 호소하듯이 오직 망하는 것밖에 없습니다.

 

37편이 말하는 선과 악의 구별은 율법이나 규칙을 준수하는 의미의 구분은 아닙니다. 물론 지킬 것을지켜낸다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것을 지킨다고 해서 여기서 말하는 선과 완전하게 일치하는 것은 아닙니다. 법률적 선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종교적인 선을 말하는 것도 아닙니다. 다윗이 말하려는 선을 바꾸어 말한다면 「마음의 선」입니다. 종교에 소속했다고 해서 선이 아니고 잘못한 일이 없다고 해서 그것이 선인 것도 아닙니다. 선, 그 하나님의 가치는 37편의 키워드만 열거해도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성실, 기쁨, 인내, 기대, 온유, 화평, 지혜, 공의, 평안…」입니다. 31절에서는 「그 마음에 하나님의 법이 있으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선한 일을 하시는 분」이 아니고 「하나님은 선」이십니다. 하나님은 선 그 자체이십니다. 내 복잡한 마음을 정돈하고 그 안에 하나님을 닮은 마음이 항상 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