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T

신명기 29:1-9
29:1 호렙에서 이스라엘 자손과 세우신 언약 외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사 모압 땅에서 또 그들과 세우신 언약의 말씀이 이러하니라
29:2 모세가 온 이스라엘을 소집하고 그들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애굽 땅에서 너희 목전에 바로와 그 모든 신하와 그 온 땅에 행하신 모든 일을 너희가 보았나니
29:3 곧 그 큰 시험과 이적과 큰 기사를 네가 목도하였느니라
29:4 그러나 깨닫는 마음과 보는 눈과 듣는 귀는 오늘날까지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지 아니하셨느니라
29:5 주께서 사십년 동안 너희를 인도하여 광야를 통행케 하셨거니와 너희 몸의 옷이 낡지 아니하였고 너희 발의 신이 해어지지 아니 하였으며
29:6 너희로 떡도 먹지 못하며 포도주나 독주를 마시지 못하게 하셨음은 주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이신 줄을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29:7 너희가 이곳에 올 때에 헤스본 왕 시혼과 바산 왕 옥이 우리와 싸우러 나왔으므로 우리가 그들을 치고
29:8 그 땅을 취하여 르우벤과 갓과 므낫세 반 지파에게 기업으로 주었나니
29:9 그런즉 너희는 이 언약의 말씀을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의 하는 모든 일이 형통하리라

 

광야를 통과하던 40년의 시간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의 옷은 낡지 않았고 신발은 해어지지 않았습니다. 광야는 고난의 시간이었지만 하나님은 특별한 방식으로 은총을 경험하게 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은 오직 하나님의 공급에 의해 기적의 광야 생활을 체험했습니다. 사치하지 못했을지라도 불가결한 필요가 결핍되지는 않았습니다. 매일 성실하면 만나를 먹을 수 있었고 헤어지지 않고 낡지 않은 옷과 신을 신을 수 있습니다. 추울 때는 불기둥이 난방을 해주었고 더울 때는 구름기둥이 냉방을 해주었습니다. 이스라엘은 그것을 기억해야 했습니다.

 

은혜의 기억을 잊어버리는 때는 결핍의 때가 아니고 풍족의 때입니다. 돈이 많다고 해서 은혜가 많은 것이 아닙니다. 조금 있는 돈 때문에 은혜가 결핍된 삶을 사는 사람들은 많습니다. 우리는 쉽게 눈앞의 걱정에 휩싸이지만 성도는 뒤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지나간 날을 돌이켜 보면 거기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합니다. 하나님이 보이지 않을 때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면 그날에 함께하신 하나님이 흔적이 보일 것입니다.

 

우리는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과 달라서 옷과 신발을 재정 안에서 구입합니다. 만약 광야에 시장이 있었으면 하나님은 돈을 주어 사게 하셨을 것입니다. 방법이 다를 뿐 공급은 하나님에 의한 것입니다. 성도의 재정관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재정은 신앙의 기본이면서 동시에 모든 것을 드러내는 실체가 됩니다. 재정을 하나님께 맡길 수 없다면 아직 아무것도 맡길 수 없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광야를 통과해야 했듯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은 사람은 반드시 재정의 테스트를 통과해야 합니다.

 

자신의 재정을 공급하시는 분이 하나님이라는 것을 믿고 고백하지 못하면 삶의 주인은 여전히 자신이 됩니다. 돈이 세상에서 왕 노릇한다는 것은 새삼스레 강조하지 않아도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신앙은 세상에서 왕노릇하고 있는 돈의 힘에 저항하는 싸움입니다. 하나님이 주인이시기 때문에 성도로서는 피해갈 수 없는 싸움입니다. 돈을 이기지 못하면 세상을 이길 수 없습니다.

 

존 웨슬리는 지갑이 회개하지 않으면 참으로 회개한 것이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웨슬리가 헌금을 독려하려 했던 말이 아닙니다. 돈의 행방을 보면 인생의 목적과 방향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성도의 재정 지출내역을 감시하시는 것이 아니고 수입의 출처를 인정하고 기억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어떻게 지출하는가는 그다음 문제입니다. 이미 읽은 신명기 8장을 기억합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을 주셨음이라 이같이 하심은 네 열조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오늘과 같이 이루려 하심이니라 신명기 8:18 」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옷과 신발이 해어지지 않았으니 분명히 특별한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보다 더 큰 은혜를 경험했습니다. 옷과 신발이 해어지기 전에 새 옷을 사 입고 새 신을 사 신었으니 그것이 더 좋은 은혜입니다. 신어도 신어도 낡지 않는 신발보다는 새 신발이 더 좋습니다. 더 좋은 신발과 옷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헌신을 핑계로 무책임한 가장으로 살았지만 돌아보니 옷도 신발도 헤어지지 않았습니다. 공급자는 하나님이십니다.

 

모든 악의 근원이 돈을 사랑하는 탐심입니다. 하나님의 것을 자기 것인 줄 알고 탐욕을 부리면 주신 이의 의도가 무색해집니다. 「돈을 사랑치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과연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과연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히 13:5 」은혜를 은혜로 인정하는 것, 은혜를 은혜로 고백하고 기억하는 것, 그것이 은혜를 지속하게 하는 힘입니다.

 

바울은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고 빌립보 교회와 성도를 축복했습니다. 가난한 중에 힘이 넘치도록 선교했던 빌립보 교회에 대한 축복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삶의 목적과 방향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것입니다. 그 말씀을 하시면서 재정에 약한 우리를 향해서 책망하셨습니다.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은혜를 기억하는 믿음이 시작되면 心配無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