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T

창세기 48:12~22
48:12 요셉이 아비 무릎 사이에서 두 아들을 물리고 땅에 엎드려 절하고
48:13 우수로는 에브라임을 이스라엘의 좌수를 향하게 하고 좌수로는 므낫세를 이스라엘의 우수를 향하게 하고 이끌어 그에게 가까이 나아가매
48:14 이스라엘이 우수를 펴서 차자 에브라임의 머리에 얹고 좌수를 펴서 므낫세의 머리에 얹으니 므낫세는 장자라도 팔을 어긋맞겨 얹었더라
48:15 그가 요셉을 위하여 축복하여 가로되 내 조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의 섬기던 하나님, 나의 남으로부터 지금까지 나를 기르신 하나님,
48:16 나를 모든 환난에서 건지신 사자께서 이 아이에게 복을 주시오며 이들로 내 이름과 내 조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의 이름으로 칭하게 하시오며 이들로 세상에서 번식되게 하시기를 원하나이다
48:17 요셉이 그 아비가 우수를 에브라임의 머리에 얹은 것을 보고 기뻐 아니하여 아비의 손을 들어 에브라임의 머리에서 므낫세의 머리로 옮기고자 하여
48:18 그 아비에게 이르되 아버지여 그리 마옵소서 이는 장자니 우수를 그 머리에 얹으소서
48:19 아비가 허락지 아니하여 가로되 나도 안다 내 아들아 나도 안다 그도 한 족속이 되며 그도 크게 되려니와 그 아우가 그보다 큰 자가 되고 그 자손이 여러 민족을 이루리라 하고
48:20 그 날에 그들에게 축복하여 가로되 이스라엘 족속이 너로 축복하기를 하나님이 너로 에브라임 같고 므낫세같게 하시리라 하리라 하여 에브라임을 므낫세보다 앞세웠더라
48:21 이스라엘이 요셉에게 또 이르되 나는 죽으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사 너희를 인도하여 너희 조상의 땅으로 돌아가게 하시려니와
48:22 내가 네게 네 형제보다 일부분을 더 주었나니 이는 내가 내 칼과 활로 아모리 족속의 손에서 빼앗은 것이니라

 

요셉 대신 에브라임과 므낫세가 열두 지파의 한 지파를 차지하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생각해보면 에브라임과 므낫세의 모계는 이집트 제사장의 딸입니다. 인종적으로나 영적으로 이스라엘을 형성하기에 순혈이라 할 수 없습니다. 야곱은 자신의 아들들보다 양자삼은 요셉의 아들을 더욱 축복하였습니다. 그러니 이스라엘이 시작할 때부터「우리만」이라는 개념은 없었던 것입니다.

 

야곱이 오른손을 차남인 에브라임의 머리에 올리고 축복하고 장남인 므낫세의 머리에는 왼손을 올리고 축복하자 요셉이 오른손을 장남의 머리 위에 올려달라고 요구하지만 야곱은 바꾸지 않습니다. 에브라임에게 더 많은 축복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실제로 이스라엘 역사에서 에브라임은 아주 강력한 지파가 됩니다.

 

요셉의 아들들이 요셉 지파의 후손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아버지가 되는 것은 보수적인 순혈주의를 거부한 것이고 므낫세보다 에브라임이 더 많은 축복을 받은 것은 전통적 서열까지도 거절된 것입니다. 마태복음의 예수님의 족보를 보면 혈통적 순혈이 아니고 서열도 아니고 도덕적 우위도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성경은 장자를 늘 말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장자가 아닌 사람을 통해서 약속이 이어집니다. 아담의 장남은 가안이지만 셋으로 이어지고, 이삭의 장남은 이스마엘이었지만 약속은 이삭에게 이어지고, 이삭의 장남인 에서 대신에 야곱, 야곱의 장남 르우벤 대신에 요셉입니다. 그리고 이제 므낫세 대신에 에브라임입니다.

 

하나님은 주권대로 사람을 세우시고 역사를 이루어 가십니다. 그 이유나 근거, 합리성을 찾을 수 없습니다. 무리하게 교훈적 의미를 찾지 않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어떤 이유로 누구를 불러 무슨 일에 쓰시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것을 일반화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인사(人事)에 대해서는 하나님의 고유권한을 존중할 뿐입니다. 이유도 없이 자격도 없이 구원으로 부름받은 성도의 마땅한 자세입니다. 「왜 저 사람인가」는 말은 할 수 없지만 「나에게도」를 소망할 수는 있습니다. 순혈도 아니고 도덕도 아니고 서열도 아니니 나에게도 바랄 자격이 생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