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T

에베소서 6:18~24
6:18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고
6:19 또 나를 위하여 구할 것은 내게 말씀을 주사 나로 입을 벌려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옵소서 할 것이니
6:20 이 일을 위하여 내가 쇠사슬에 매인 사신이 된 것은 나로 이 일에 당연히 할 말을 담대히 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6:21 나의 사정 곧 내가 무엇을 하는지 너희에게도 알게 하려 하노니 사랑을 받은 형제요 주 안에서 진실한 일군인 두기고가 모든 일을 너희에게 알게 하리라
6:22 우리 사정을 알게 하고 또 너희 마음을 위로하게 하기 위하여 내가 특별히 저를 너희에게 보내었노라
6:23 아버지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로부터 평안과 믿음을 겸한 사랑이 형제들에게 있을지어다
6:24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변함 없이 사랑하는 모든 자에게 은혜가 있을지어다

 

사도행전 20장에 보면 바울이 3차 전도 여행을 마치고 서둘러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려고 합니다. 가는 길에 에베소를 방문하고 싶었지만 시간과 여건이 되지 않아 밀레도라는 항구로 에베소의 장로들을 오게 했고 거기서 에배소 교회와의 작별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그들은 진실했고 또 애통했습니다. 이미 순교를 직감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순교적 사명을 선언(행20:24)했고 에베소 장로들은 죽으러 가려는 산 사람을 끌어안고 울었습니다. (행20:37) 예루살렘으로 돌아간 바울은 예상대로 체포되었습니다. 바울은 항소하여 로마로 압송되었고 로마에서 옥중편지를 써서 에베소로 보냈는데 그것이 우리가 이번 가을에 읽은 에베소서입니다.

 

에베소 교회는 밀레도에서 울면서 바울과 작별했고, 로마의 감옥으로부터 온 바울의 편지를 받고 울었을 것이고, 그리고 더 이상 바울을 만날 수 없어 슬펐을 것입니다. 바울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부끄러움 없이, 두려움 없이 전하다가 로마에서 목이 잘려 죽었습니다. 바울은 에베소 성도들에게 자신이 그렇게 살고 그렇게 죽을 수 있도록 중보기도 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바울의 걱정은 자신의 안전이 아니라 에베소 교회였습니다. 밀레도의 항구에서도 로마의 감옥에서도 에베소 교회를 걱정했습니다. 형제들의 결속과 사랑을 당부하였고 미숙한 성도들 품어줄 것을 당부하였고 이단과 세상의 유혹에 휩쓸리지 않기를 당부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그렇게 애쓰고 고생하며 세웠던 에베소 교회는 요한계시록에서 하나님에게 책망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2:4」 그토록 준엄한 헌신과 감동으로 시작한 교회도 시간이 지나면서 약해질 수밖에 없었나 봅니다. 교회 안에 사람들이 있으니 교회도 약해지고 타락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인간이 하는 모든 일은 후패합니다. 사람은 죽고 역사적 교회는 사라집니다. 초대교회로 돌아가자는 말을 하지만 초대교회는 문제투성이였고 영원하지도 않습니다. 역사적 교회는 인간의 육체와 같이 때가 되면 망하고 사라집니다.

 

오늘은 종교개혁기념일입니다. 오늘 읽은 바울의 마지막 인사에서 교회가 기억해야 할 것을 찾아야 했습니다. 바울의 마지막 인사는 서로를 사랑하는 중보의 기도와 복음 전도의 사역에 천착할 것과 평안과 믿음을 겸한 사랑입니다. 사라지는 바울이 제일 멋있습니다. 이 시대 이른바 공로많은 목사들의 집착과 욕심도 사라지면 좋겠습니다. 바울은 지금 우리 가운데 없고 터키에 가 보아도 그때의 에베소 교회는 없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울이 당부했던 말씀입니다. 여기서 그 말씀이 다시 재현되는 것밖에 없습니다. 교회 안팎에서 모든 사람들이 교회를 미워하는 시대에 바울의 마지막 인사를 종교개혁기념일 아침의 인사로 대신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변함없이 사랑하는 모든 자에게 은혜가 있을지어다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