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디아서 1:1-10
1:1 사람들에게서 난 것도 아니요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도 된 바울은
1:2 함께 있는 모든 형제와 더불어 갈라디아 여러 교회들에게
1:3 우리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1:4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자기 몸을 주셨으니
1:5 영광이 그에게 세세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1:6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을 따르는 것을 내가 이상하게 여기노라
1:7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교란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게 하려 함이라
1:8 그러나 우리나 혹은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1:9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가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1:10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들의 기쁨을 구하였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철학에서는 모든 일의 시작, 근본, 즉 ‘제일원인’ 이 무엇인지를 밝히기 위해 끝없이 고찰합니다. 고대와 중세에는 제일원인을 신, 혹은 자연 등으로, 르네상스 이후로는 인간과 정신 등, 도착점은 다를지라도 결국 모든 일의 원인이 무엇이며, 어디에 있는지를 알고 싶어하고, 규정하려 했습니다.
이 문제는 비단 철학자들만의 문제가 아닌, 그리스도인들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조금 다른 것은, 우리는 제일원인을 밝혀내기 위함이 아닌, 우리의 제일원인이신 하나님이, 정말 자신의 안에서 제일원인이 되고 있는가를 성찰하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돌아볼 수 있는 세 가지는, 자신의 존재의 제일원인, 복음의 제일원인, 삶의 제일원인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의 첫 인사말에서 자신의 존재의 정의, 그리고 직분의 정의를 오직 하나님께로 돌리고 있습니다. 또한 다른 복음, 즉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가 제일원인이 아닌 복음에 대해 경고하며, 자신의 삶의 제일원인이 사람들에게 있다면 자신은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 구조는 끝없이 순환하는 고리와 같은 구조입니다. 하나님을 우리의 창조주로서, 우리의 주인으로서 믿는 것, 그리고 그 분이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하신 일들, 그 복음을 믿는 것, 그리고 자신의 삶의 중심이 그리스도에게 있어야 함을 믿는 것, 어딘가 한 부분이 잘못되어 있는 것 같다면, 앞뒤의 부분을 재검토함을 통해 바로잡을 수 있게 됩니다.
제일원인이라는 철학 용어를 사용하지 않고, 우리에게 익숙한 말로 이것을 표현한다면, 나는 무엇으로 말미암는가, 복음은 무엇으로 말미암는가, 내 삶은 무엇으로 말미암는가 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는 끝없이 우리의 신앙을 검토해야 하는 존재입니다. 언제 우리의 죄가 우리를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할 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 때에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가 ‘무엇으로 말미암는가’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