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디아서 3:1~9
3:1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
3:2 내가 너희에게 다만 이것을 알려 하노니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은 율법의 행위로냐 듣고 믿음으로냐
3:3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
3:4 너희가 이같이 많은 괴로움을 헛되이 받았느냐 과연 헛되냐
3:5 너희에게 성령을 주시고 너희 가운데서 능력을 행하시는 이의 일이 율법의 행위에서냐 듣고 믿음에서냐
3:6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이것을 그에게 의로 정하셨다 함과 같으니라
3:7 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아들인줄 알지어다
3:8 또 하나님이 이방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 정하실 것을 성경이 미리 알고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되 모든 이방이 너를 인하여 복을 받으리라 하였으니
3:9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
갈라디아 성도들은 무엇인가에 대해서 현혹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교회를 시작한 것은 분명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믿음의 단추가 잘못 채워지기 시작했습니다. 탈선입니다. 믿음이 아닌 것을 믿음이라고 착각하고 그 길에서 열심을 내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이 의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그리스도인이 된 것으로 생각할 수 있으나, 예수 그리스도를 참으로 믿는다는 것은 성령이 아니고는 참으로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니 성령이 마음의 감동을 주시고 생각과 마음을 주관하시고 조건과 상황을 이끌어 주셔야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습니다.
문제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믿음을 잃어버린다는 것입니다. 믿음에 대해서 무관심하거나 방치했을 때만 그런 것은 아닙니다. 믿음의 형태는 가지고 있습니다. 열심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내용과 형식을 혼동해 버립니다. 형식에 집착해서 그 형식 자체가 본질인 줄로 생각하게 되면 그것이 신앙인 줄 착각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형식은 「율법」이라는 말로 제시됩니다. 1세기의 율법은 유대교의 종교적 규율을 넘어서 삶의 모든 영역에 걸친 규범이었습니다. 사회적이고 도덕적 규율과 법적 규칙까지 포함합니다. 그러나 신약성경에서 율법이라는 말의 용법은 「복음이 보이지 못하게 가리는 것」으로 주로 사용됩니다. 율법이 복음의 반대편에 대적자의 모습으로 있는 것은 아니지만 복음 바로 옆에 서 있으면서 복음을 가리려고 하는 것입니다.
바울이 갈라디아서를 쓴 이유는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이 복음을 떠나 율법주의로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되돌리기 위한 것입니다. 이른바 유대주의자, 즉 율법주의자들이 교회에 들어왔습니다. 유대 율법을 지키지 않으면 구원을 완성할 수 없다는 사람들입니다. 외부에서 숨어들어온 사람들일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복음의 인식이 약해지면 외부에 취약하게 노출되겠지만, 틀림없이 내부의 공기 안에서도 퇴색과 변질이라는 것이 진행되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답답한 바울은 이 사태에 대해서 웅변해야 했고 그래서 아브라함의 이야기를 끄집어 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축복을 약속하신 사람입니다. 「아브라함의 복」이라는 말은 누구나 알고 있는 말입니다. 창세기에서 그 축복의 약속은 세 번에 걸쳐서 반복되고 강조됩니다. 「12:3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 「18:18 아브라함은 강대한 나라가 되고 천하 만민은 그를 인하여 복을 받게 될 것이 아니냐」 「22:18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
바울의 말은 이렇습니다. 아브라함이 복을 받은 것은 율법의 행위가 아니고 믿음의 이유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믿음과 약속 위에 축복을 주셨는데 그것이 아브라함이 율법을 잘 지켜서 축복해 주신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 시키실 때, 그들이 율법을 잘 지키는 준수한 백성이라서 구원해 주신 것이 아니고, 약속에 의해서 구원해 주신 이후에 율법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구약을 읽을 때 익숙한 「아브라함의 복」을 갈라디아서에서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전한 복음」이라고 말합니다. 「3:8 또 하나님이 이방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 정하실 것을 성경이 미리 알고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되 모든 이방이 너를 인하여 복을 받으리라 하였으니」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복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었다는 것이고, 아브라함 이후의 구약의 모든 역사는 복음 전도의 역사입니다.
최근에 자주 이야기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만, 복음을 믿는 믿음은 종교로서의 기독교, 그것이 만들어낸 권위나 권력, 종교적이거나 조직적이거나 문화적인 힘, 그 영향력까지 모두 거절하고 개인적 영역에서 성령으로 힘입어 믿게 되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회복해야 합니다. 그것은 말씀을 통한 개인적이고 지적이고 인격적인 과정을 통해서만 가능한 것입니다. 바울은 갈라디아에게 그것을 당부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