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T

마가복음 11:15-25
11:15 저희가 예루살렘에 들어가니라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사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자들을 내어 쫓으시며 돈 바꾸는 자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자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시며
11:16 아무나 기구를 가지고 성전 안으로 지나다님을 허치 아니하시고
11:17 이에 가르쳐 이르시되 기록된바 내 집은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라 칭함을 받으리라고 하지 아 니하였느냐 너희는 강도의 굴혈을 만들었도다 하시매
11:18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듣고 예수를 어떻게 멸할까 하고 꾀하니 이는 무리가 다 그의 교훈 을 기이히 여기므로 그를 두려워함일러라
11:19 매양 저물매 저희가 성밖으로 나가더라
11:20 저희가 아침에 지나갈 때에 무화과나무가 뿌리로부터 마른 것을 보고
11:21 베드로가 생각이 나서 여짜오되 랍비여 보소서 저주하신 무화과 나무가 말랐나이다
11:22 예수께서 대답하여 저희에게 이르시되 하나님을 믿으라
11:23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지우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룰줄 믿고 마음에 의심치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11:24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11:25 서서 기도할 때에 아무에게나 혐의가 있거든 용서하라 그리하여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도 너희 허물을 사하여 주시리라 하셨더라

 


예수님이 말씀하신「만민의 기도하는 집」은 이사야 56장 7절의 인용입니다. 예배당 입구에 이 구절이 걸려있는 곳이 많습니다. 말씀대로라면 누구나 와서 기도해야 하는 집이어야 합니다.

 

온유대가 아니고 땅끝까지 있을 만민입니다. 교회가 정치적이든 도덕적이든 누군가를 거부하고 차별한다면 입구에 걸어둔 말씀에 모순을 범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방인들에게 예배자의 지위가 회복되어야 할 것을 선언하신 것입니다.

 

한편 본문에는「강도의 굴혈」이라는 표현도 나옵니다. 이것도 예수님이 예레미야 7장을 인용하신 것입니다. 예레미야가 위선적인 종교의식을 책망하고 결국 성전이 파괴될 것을 예언할 때 사용된 말입니다.

 

「만민의 기도하는 집」과「강도의 굴혈」, 그리고 이후 20절에 나오는「뿌리 마른 무화과나무」는 서로 다른 주제가 아닙니다. 당시 성전 권력은 감람산에 독점적으로 제물을 판매하는 시장을 개설했습니다.

 

예배자들은 흠도 없고 점도 없는 짐승을 골라 집에서 가지고 오지만 여정에 흠이 생길 것이고 성전이 이것에 불가판정을 하면 시장에서 새것을 사야 했습니다. 환전과 성전세 수입의 과정에서 이미 착취가 이루어졌고 제물은 고가로 독점판매하였습니다.

 

그것도 모자라서 성전 안에도 가축시장의 출장소를 만들어 더 높은 가격으로 판매하고 있었습니다. 성전은 가축시장의 소란과 냄새로 가득했을 것입니다. 성전 안에는 원래「이방인의 뜰」이라는 공간이 있는데 이방인은 거기까지만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대제사장은 이 이방인의 뜰을 상인들에게 제공하여 장사를 하게 하고 그 이익을 공유했습니다. 예수님은 그것을 들어 엎어 상인들과 가축들을 내보시고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장사만 비판하신 것이 아니고 이방인의 뜰을 빼앗을 것에 분노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민족적이고 종교적인 배타주의, 그리고 종교적 상업주의를 엄격하게 비판하셨습니다. 이사야는 내가 너로 이방의 빛을 삼아 나의 구원을 베풀어서 땅 끝까지 이르게 하리라고 예언했습니다. 이스라엘의 자부심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모든 민족 즉 이방인들의 빛으로 삼으셨다는 것 아닙니까?

 

기독교 신앙의 정체성 또한 세상의 빛입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예수님의 산상수훈의 말씀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승천하시면서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가서 예배의 회복 복음을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기독교가 폐쇄적이고 배타적이라는 것은 곧 자신의 정체성과 사명을 통째로 부정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스라엘의 종교적 현실을 뿌리까지 마른 무화과나무로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말씀은 용서하라는 말씀으로 끝납니다. 성전 정결이라고 불리는 이 사건은 가축시장을 몰아내고 물을 뿌려 청소한 것이 아니고 편협한 민족주의와 배타주의의 기득권 안에 부패한 종교에 대한 정결 사건입니다.

 

대제사장이 예수님을 죽이기로 결심한 것은 바로 이 순간입니다. 폐쇄된다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를 실감하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편협한 배타성에서 벗어나려면 이웃을 용서하고 받아들이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그리하여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도 너희 허물을 사하여 주시리라 하셨더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