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 4:1~18
4:1 느부갓네살 왕은 천하에 거하는 백성들과 나라들과 각 방언하는 자에게 조서하노라 원하노니 너희에게 많은 평강이 있을지어다
4:2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 내게 행하신 이적과 기사를 내가 알게 하기를 즐겨하노라
4:3 크도다 그 이적이여 능하도다 그 기사여 그 나라는 영원한 나라요 그 권병은 대대에 이르리로다
4:4 나 느부갓네살이 내 집에 편히 있으며 내 궁에서 평강할 때에
4:5 한 꿈을 꾸고 그로 인하여 두려워하였으되 곧 내 침상에서 생각 하는 것과 뇌 속으로 받은 이상을 인하여 번민하였었노라
4:6 이러므로 내가 명을 내려 바벨론 모든 박사를 내 앞으로 불러다가 그 꿈의 해석을 내게 알게 하라 하매
4:7 박수와 술객과 갈대아 술사와 점장이가 들어왔기로 내가 그 꿈을 그들에게 고하였으나 그들이 그 해석을 내게 알게 하지 못하였느니라
4:8 그 후에 다니엘이 내 앞에 들어왔으니 그는 내 신의 이름을 좇아 벨드사살이라 이름한 자요 그의 안에는 거룩한 신들의 영이 있는자라 내가 그에게 꿈을 고하여 가로되
4:9 박수장 벨드사살아 네 안에는 거룩한 신들의 영이 있은즉 아무 은밀한 것이라도 네게는 어려울 것이 없는 줄을 내가 아노니 내 꿈에 본 이상의 해석을 내게 고하라
4:10 내가 침상에서 나의 뇌 속으로 받은 이상이 이러하니라 내가 본즉 땅의 중앙에 한 나무가 있는데 고가 높더니
4:11 그 나무가 자라서 견고하여지고 그 고는 하늘에 닿았으니 땅 끝에서도 보이겠고
4:12 그 잎사귀는 아름답고 그 열매는 많아서 만민의 식물이 될 만하고 들짐승이 그 그늘에 있으며 공중에 나는 새는 그 가지에 깃들이고 무릇 혈기 있는 자가 거기서 식물을 얻더라
4:13 내가 침상에서 뇌 속으로 받은 이상 가운데 또 본즉 한 순찰자 한 거룩한 자가 하늘에서 내려왔는데
4:14 그가 소리 질러 외쳐서 이처럼 이르기를 그 나무를 베고 그 가지를 찍고 그 잎사귀를 떨고 그 열매를 헤치고 짐승들로 그 아래서 떠나게 하고 새들을 그 가지에서 쫓아내라
4:15 그러나 그 뿌리의 그루터기를 땅에 남겨두고 철과 놋줄로 동이고 그것으로 들 청초 가운데 있게 하라 그것이 하늘 이슬에 젖고 땅의 풀 가운데서 짐승으로 더불어 그 분량을 같이 하리라
4:16 또 그 마음은 변하여 인생의 마음 같지 아니하고 짐승의 마음을 받아 일곱 때를 지나리라
4:17 이는 순찰자들의 명령대로요 거룩한 자들의 말대로니 곧 인생으로 지극히 높으신 자가 인간 나라를 다스리시며 자기의 뜻대로 그것을 누구에게든지 주시며 또 지극히 천한 자로 그 위에 세우시는 줄을 알게 하려 함이니라 하였느니라
4:18 나 느부갓네살 왕이 이 꿈을 꾸었나니 너 벨드사살아 그 해석을 밝히 말하라 내 나라 모든 박사가 능히 그 해석을 내게 알게 하지 못하였으나 오직 너는 능히 하리니 이는 거룩한 신들의 영이 네 안에 있음이니라
4장은 느부갓네살의 두 번째 꿈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4장은 2장과 3장 사건이 있은 후 시간이 많이 지난 뒤의 일입니다. 바벨론의 정복 전쟁도 끝이 나고 바벨론 사회는 안정되었습니다. 그간 2장의 첫 번째 꿈의 해석과 풀무불에 던져진 세 친구들을 통해서 왕은 이미 부정할 수 없는 하나님의 힘을 경험했습니다.
그렇지만 그런 사건들을 통해 왕이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가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을 보여주면 믿겠노라고 말하지만 사람들은 하나님을 경험하여도 하나님을 믿지 않습니다. 외부에서 일어나는 사건이나 현상은 믿음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일 뿐 믿음은 자신의 내부에서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서 자신이 없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인정한 자신의 변화에 대해서 자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경험했지만 믿지 않는 상태를 지속합니다.
왕은 권력을 가진 사람이지만 달리 말하면 권력이라는 사슬에 묶여서 자유하지 못하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왕이 하나님을 경험한 것은 하나의 사건이었을지 모르지만 제국의 종교정책은 시간과 수고를 들여 체계적으로 바꾸어야 하는 귀찮고 위험한 입니다. 이것에 엄두가 안 날 때 쓸 수 있는 방법이 「아직 하나님을 잘 모르겠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신앙은 삶의 모습을 변화시킬 것이고 그 변화가 두려울 때 하나님은 「보류」 상태가 됩니다.
왕은 하나님을 경험했고 그것을 자신의 입으로 고백하기도 했지만 바벨론의 신 마르둑과 벨도 여전히 자신에게 중요한 신이었습니다. 다신론 안에서 하나님을 부분적으로 인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신비가 있으면 거기에 곧 하나님을 부여하기를 좋아하지만 신비 중에 신비는 창조의 하나님이 알아지고 구원의 하나님이 믿어지는 신비입니다.
본문은 왕이 백성들에게 조서를 내리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두 번째 꿈을 꾸고 다니엘을 통해 해석을 받은 후 1년이라는 시간이 더 흐른 후에 과거에 있었던 그 일들을 회고하면서 쓴 글입니다. 자신의 꿈에 나타난 풍성한 나무는 하늘까지 닿아 있습니다. 제국은 평안하고 형통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에 의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나무를 다루는 존재 즉 한 순찰자, 한 거룩한 자가 하늘에서 내려옵니다. 형통과 성공을 주는 분이 하나님이시라면 그것을 제한하고 심판하는 것도 하나님이십니다.
왕은 두 번째 꿈과 그 사이의 시간을 지나면서 하나님은 이스라엘만의 하나님이 아니고 온 세상의 주인이시며 전능하신 하나님이심을 다시 고백합니다. 인생이 걸어온 길을 돌아보았을 때 감히 하나님이 없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눈을 가려도 하늘이 없어지지 않듯이 인정하지 않아도 하나님은 계십니다. 하나님이 없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지 않을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