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1장 8-17절
1:8 첫째는 내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너희 모든 사람을 인하여 내 하나님께 감사함은 너희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됨이로다
1:9 내가 그의 아들의 복음 안에서 내 심령으로 섬기는 하나님이 나의 증인이 되시거니와 항상 내 기도에 쉬지 않고 너희를 말하며
1:10 어떠하든지 이제 하나님의 뜻 안에서 너희에게로 나아갈 좋은 길 얻기를 구하노라
1:11 내가 너희 보기를 심히 원하는 것은 무슨 신령한 은사를 너희에게 나눠 주어 너희를 견고케 하려함이니
1:12 이는 곧 내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와 나의 믿음을 인하여 피차 안위함을 얻으려 함이라
1:13 형제들아 내가 여러번 너희에게 가고자 한것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이는 너희 중에서도 다른 이방인 중에서와 같이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로되 지금까지 길이 막혔도다
1:14 헬라인이나 야만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
1:15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는대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
1:16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
1: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로마서는 바울이 3차 전도 여행 중이었을 때 고린도에서 로마로 써서 보낸 편지입니다. 그 당시 바울의 선교적 시야는 서지중해 지역으로 확장되어 있습니다. 이탈리아 반도를 중심으로 볼 때 동쪽인 발칸반도 남부에 있는 그리스와 고린도 그리고 소아시아 (지금의 터키) 까지 선교를 끝낸 바울은 이탈리아 반도를 넘어 지중해 서쪽 끝인 스페인 선교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스페인의 서쪽에는 북대서양이 있고 그 바다를 건너가면 캐나다 몬트리올이 있지만 바울 당시는 스페인이 땅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살아 있을 때 예수님의 명령하신 땅끝까지 선교하려고 했습니다. 바울이 스페인 선교를 하기 위해서는 교두보가 필요했고 지정학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이탈리아 반도에 있는 로마의 역할은 대단히 중요했습니다.
물론 로마가 바울의 스페인 선교를 지원하는 역할을 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 로마 교회가 복음 위에 분명히 서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간 3차 전도 여행을 통한 바울의 경험과 신학적 축적은 정교한 복음의 신학을 정리하여 로마로 발송하게 됩니다. 로마교회는 사도 중 누군가가 가서 선교한 것이 아닙니다. 유대인들이 로마로 이주하면서 생겨난 것으로 추정합니다. 그러니 사도들의 지도를 받았던 지역의 교회들보다는 복음에 대한 이해가 부족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 이유로 로마서는 스페인을 포함한 서지중해 선교의 교두보 마련을 위한 바울의 신학적인 기초작업으로서의 의미로 보내졌습니다.
바울은 로마 교회 성도들의 선교의 열심에 대해서 감사하면서 머지않은 장래에 로마를 방문할 의지를 나타냅니다. 그때는 서로를 위해서 협력할 것이 있음을 말하는데 바울의 비전이 드러나고 있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는 대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 1:15」 바울이 로마 교회에 대한 복음 전파를 강력하게 표명한 것은 로마 교회에 아직 복음을 없어서가 아니라 선교의 원동력은 복음의 감격과 전파의 기쁨에 있기 때문입니다. 알지 못하면 믿을 수 없고 믿음이 없이는 선교할 수 없습니다. 바울의 선교는 제한과 거침이 없습니다. 지역을 넘나드는 것뿐만 아니라 인종과 민족과 언어와 문화를 구분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바울의 선교가 특별한 것이 아니고 그래야 복음이기 때문이고 바울의 정신이 아니라 복음의 정신입니다. 바울이 가진 언어의 은사와 국제적 경험과 감각이 그리스도의 복음 전파에 유용하게 쓰임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헬라인이나 야만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 1:14」유대인들은 유대인과 이방인이라는 구분법을 쓰지만, 바울은 로마서에서 로마를 배려하여 헬라인과 야만인이라고 구분 지었습니다. 누구를 중심에 두느냐의 따라 표현만 다를 뿐 결국 모든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복음은 모든 사람에게 필요합니다. 복음은 보편적이어야만 합니다. 특정 민족을 위하거나 어떤 계층을 위한 복음은 이미 모순입니다. 타인을 받아들이지 않는 복음은 가짜입니다. 복음은 인종과 민족과 국가와 언어와 문화에 의해 구분되지 않습니다. 예루살렘의 교회와 로마의 교회가 다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하나님의 교회입니다. 한국교회는 없고 일본교회도 없습니다. 일본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한국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가 있을 뿐입니다.
그래서 1장 16절에서 로마서의 중요한 주제 하나가 서둘러서 등장합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 1:16」 여기서 첫째가 유대인이 되고 그다음이 헬라인인 것은 유대인의 우월성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 또한 바울의 선교적 안목에서 나오는 표현입니다. 바울이 선교지에 도착하면 제일 먼저 가는 곳은 유대인 회당인 시나고그였습니다. 거기서 우선적으로 전도하는 대상은 물론 유대인 디아스포라들입니다. 유일신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세계관을 가진 유대인들에게 먼저 복음을 전하고 그것이 교회와 선교의 기반이 되어서 지역을 선교할 수 있게 하는 바울의 선교전략입니다.
복음은 어떻게 해서 유대인과 이방인에게 차별이 없이 모든 믿는 자들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될 수 있습니까? 17절은 로마서에서 두 번째 주제를 서둘러서 밝히고 있습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1:17」바울이 말하는 의는 인간의 정의가 아니고 하나님의 속성입니다. 인간이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인해 인간을 의롭다고 선언하시는 법적인 의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에게 인간의 죄가 전가되어 예수는 죽었습니다. 그러나 다시 사신 그리스도의 의가 죄인들에게 전가되었습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복음 안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고 모든 육체는 그 특별하신 하나님의 의를 보편적 복음을 통해서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통해 의인이 되신 성도는 오직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교회와 성도는 그 구원을 모든 사람에게 전해야 하고 그것을 감히 숨기거나 부끄러워해서는 안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