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T

로마서 8:26~30
8:26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8:27 마음을 감찰하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8:29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8:30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8:26」 예수님은 요한복음 14장에서 성령님을 「보혜사 (保惠師;παράκλητος) 」로 언급하셨는데 이것을 공동번역은「협조자」로 번역했고 가톨릭 성경은 「보호자」라고 번역했습니다. 은혜를 지킨다는 의미의 「보혜」는 엄밀히 말해서 우리의 생각이나 소원이나 의지를 지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지킨다는 뜻입니다. 그러니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말은 인간의 상호 협력를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공동번역이 협조자라고 번역했을 때, 그 협조 또한 성령님이 사람에게 협조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에 협조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신자 안에 구체화하고 현실화합니다. 성령님은 우리를 도우시는 분이지만, 주목할 것은 그 모양이 탄식함으로 도우신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곧 우리의 의지와 성령님의 의지가 일치하지 않는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성령님은 택하신 자 안에서 모든 것을 유기적으로 동원하고 운용해서 선을 만들어 가실 수 있는 분이지만, 인간의 의지를 묵살하지 않습니다.

 

오직 성령님이 일하셔야 하나님의 뜻인 선이 그 신자 안에 이루어져 갈 것입니다. 그러니 사람이 할 일은 의지적으로 성령님에 대해서 문을 여는 것입니다. 문을 열지 않으면 성령님은 강제하지 않습니다. 나의 의지를 성령님에게 위탁하지 않으면 선은 조각난 상태로 문밖에 머무르고 있을 뿐입니다. 사람에게는 모든 것으로 선을 이룰 수 있는 힘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위험하게도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라는 최상의 가치, 그 거룩한 목적을 위해서 불순종의 위험에도 불구하고 인간에게 여전히 자유의지를 부여하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8:28」 신자는 인간 편에서 보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이고 한편 하나님 편에서 보면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이라는 것은 미리 아시고 정하신 예정론적 동사입니다. 다시 강조되고 있지만 부르심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이 주체가 됩니다. 그 주체적 구원사역의 목적은 신자들로 「하나님의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는 것」입니다. 구원은 사람들이 죄를 범하면서 내어버렸던 하나님의 태초의 창조목적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동기와 의지는 항상 불완전합니다. 그러나 선을 이루어간다는 것은 모든 환경과 상황과 조건을 모아 (합력해서) 하나님의 뜻을 신자의 삶에서 드러내신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어떤 계획을 세우고 실행하여도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 밖에서 일어나는 일은 없습니다. 궁극적인 위로과 평화는 하나님의 주권적 구원 사역 안에 있습니다. 하나님에 의해 택함 받았다는 자기 정체의 확인 위에 성령님께 우리 자신을 내어드릴 수 있을 때 하나님이 우리 삶 속에서 선을 이루어가실 것이라는 확신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