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T

마가복음 13:14-27

13:14 멸망의 가증한 것이 서지 못할 곳에 선 것을 보거든 (읽는 자는 깨달을진저)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지어다

13:15 지붕 위에 있는 자는 내려가지도 말고 집에 있는 무엇을 가지러 들어가지도 말며

13:16 밭에 있는 자는 겉옷을 가지러 뒤로 돌이키지 말지어다

13:17 그 날에는 아이 밴 자들과 젖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으리로다

13:18 이 일이 겨울에 일어나지 않도록 기도하라

13:19 이는 그 날들이 환난의 날이 되겠음이라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시초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

13:20 만일 주께서 그 날들을 감하지 아니하셨더라면 모든 육체가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거늘 자기가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그 날들을 감하셨느니라

13:21 그 때에 어떤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보라 저기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13:22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서 이적과 기사를 행하여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을 미혹하려 하리라

13:23 너희는 삼가라 내가 모든 일을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노라

13:24 그 때에 그 환난 후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13:25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에 있는 권능들이 흔들리리라

13:26 그 때에 인자가 구름을 타고 큰 권능과 영광으로 오는 것을 사람들이 보리라

13:27 또 그 때에 그가 천사들을 보내어 자기가 택하신 자들을 땅 끝으로부터 하늘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

 

 세상에는 크고 작은 사건들이 끊이지 않고 벌어지고 있습니다. 최근에 벌어지고 있는 전쟁, 역병, 재난 등 많은 어려움들이 사람들을 괴롭게 하고, 생명을 잃게 하고 있다는 소식은 인터넷과 뉴스의 단골 손님입니다.

 

 TV나 스마트폰의 화면 너머의 영상으로 접하는 그러한 환란의 소식들은, 그 고통과 두려움이 얼마나 큰지 우리에게 조금이나마 전해주고 있습니다. 그 조금의 감정 속에서도 우리는 두려움을 느끼거나, 그들을 불쌍히 여기고는 합니다. 때로는 우리의 일이 아니기에 조금은 안심하기도 할 것입니다.

 

 지금의 환란은 어쩌면 우리에게 크게 와닿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일부 지역에서, 일부의 사람들만이 그 환란의 때를 보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오늘 성경은 전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겪게 될 가장 큰 환란의 때를 예언하고 있습니다.

 

 이 환란의 때는 무려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입니다. 우리는 흔히 ‘주여, 어서 오시옵소서’ 라는 의미를 가진 ‘마라나타’ 라는 단어를 가지고 우리의 신앙을 고백하곤 합니다. 우리는 스스로 그 환난의 때를 바라고 있는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는 화면 너머에 있는 사람들의 고통에는 동감하고, 그들을 돕기 원하면서도, 정작 우리 옆에 있는 사람들이 겪게 될 고통은 외면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우리의 ‘마라나타’ 라는 기도, 그 고백이 옆에 있는 사람에게 있어서는 어떤 의미인지 잊고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지난 크리스마스에 우리는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는 베트남 아이들에게 선물을 보냈습니다. 다음주부터는 노토 반도 지진 피해 복구를 위한 지원 역시 시작할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알고 있듯이, 우리가 보내는 것은 단순히 물질만이 아닙니다. 그들이 이러한 고난 속에서 도움의 손길을 내어주시는 예수님을 보기 원하는 마음, 지금의 고난에서의 구제와 더불어 다가올 가장 큰 환란 속에서도 구원받을 수 있도록 우리의 마음과 물질을 함께 보내는 정말 뜻깊은 활동입니다. 하지만 정작,우리 주위의 사람들에게는 어떻습니까?

 

 그리스도인은 지금을 살면서도 앞으로의 일을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세상이 말하는 인생설계, 계획적인 사람에 그치는 것이 아닌, ‘이미, 그러나 아직’ 이라는 말처럼 하나님의 계획이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지금을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눈앞에 보이는 현실만을 보아서는 안됩니다.

 

 지금 환란 속에 있는 사람들이 겪고 있을 고통, 그 고통과는 비교할 수도 없을 고통을 우리 주위의 사람들이 겪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들을 불러 모아 지키시기 위해 우리를 지금 이 자리에 부르셨습니다. 그들을 주님 품으로 부르는 것, 다가올 환란 속에 유일한 구원의 길을 제시하는 것이 우리의 역할입니다.

 

 우리는 지금 고통을 겪고 있는 자들을 외면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그들에게 완전한 위로를 베푸실 분을 알고 있고, 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동일하게, 앞으로 고난을 겪을 자들을 외면해서도 안됩니다. 그들을 그 환란 가운데에서 건져내실 유일한 분을 우리가 알고 있고, 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