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T

마가복음 12:35~44
12:35 예수께서 성전에서 가르치실쌔 대답하여 가라사대 어찌하여 서기관들이 그리스도를 다윗의 자손이라 하느뇨
12:36 다윗이 성령에 감동하여 친히 말하되 주께서 내 주께 이르시되 내가 네 원수를 네 발 아래 둘 때까지 내 우편에 앉았으라 하셨도다 하였느니라
12:37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 하였은즉 어찌 그의 자손이 되겠느냐 하시더라 백성이 즐겁게 듣더라
12:38 예수께서 가르치실 때에 가라사대 긴 옷을 입고 다니는 것과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12:39 회당의 상좌와 잔치의 상석을 원하는 서기관들을 삼가라
12:40 저희는 과부의 가산을 삼키며 외식으로 길게 기도하는 자니 그 받는 판결이 더욱 중하리라 하시니라
12:41 예수께서 연보 궤를 대하여 앉으사 무리의 연보 궤에 돈 넣는 것을 보실쌔 여러 부자는 많이 넣는데
12:42 한 가난한 과부는 와서 두 렙돈 곧 한 고드란트를 넣는지라
12:43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가난한 과부는 연보 궤에 넣는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12:44 저희는 다 그 풍족한 중에서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구차한 중에서 자기 모든 소유 곧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하셨더라

 

세상은 희생하고 헌신하는 것을 어리석다고 생각합니다. 종교적 헌신만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세태가 그러해서 이 시대는 직장에서도, 가정에서도, 부모 자식 간에도 희생하는 사람을 마치 개인의 권리를 지켜내지 못하는 어리석은 사람으로 취급하는 것 같습니다. 최근에는 그런 이유로 결혼과 출산을 하지 않겠다는 말을 자주 듣기도 합니다. IMF 총재가 결혼하지도 않고 아이를 낳지도 않는 한국 사회를 향해 「집단자살 사회」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강제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삶은 더하기 빼기만으로 설명되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를 뺀다고 적어지지 않고, 하나를 채운다고 많아지지도 않습니다. 의미 있는 것에 희생하지 않고 가치 있는 것에 헌신하지 않고는 주어진 삶을 보람 있게 살아갈 방법을 찾을 수 없게 될 것입니다.

 

믿음의 크기는 헌신의 크기와 똑같습니다. 헌신이 작은데 믿음이 크다거나, 믿음이 큰데 헌신이 작을 수는 없습니다. 믿음과 헌신의 크기는 같을 수밖에 없고 같아야만 합니다. 허상은 포장되어 있겠지만 진리는 실제이기 때문에 각자의 삶 안에서 믿음의 진정성은 헌신의 성실로 나타날 것입니다. 원래 헌신 (献身) 이라는 말에는 100%라는 의미밖에 없습니다. 만약 그 헌신이 전적인 100%가 아니라면 헌신이라는 말이 아닌 다른 말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섭씨 100도가 되어야 물이 끓을 것이고, 물이 끓어야 세균이 죽을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하나님의 뜻을 알려고 합니다. 『내려놓음』이라는 책에서 하나님의 뜻은 100% 헌신할 때만 알 수 있다고 했던 말을 기억합니다. 틀림없이 그럴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예수님이 종교 지도자들의 파렴치와 위선을 비판하신 내용이 나오고, 또 가난한 과부가 전부를 드린 두 렙돈의 이야기가 대조적으로 나옵니다. 종교 리더십에 관한 이야기, 헌금에 관한 이야기 이전에 그 안에 있는 헌신의 순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것은 어제 읽었던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고 했던 신명기의 율법 정신 위에 있습니다. 이른바 헌신자라는 사람들은 위선적이고 탐욕적이었지만, 가난한 과부는 전적으로 모든 것을 가지고 헌신했습니다. 부자들이 낸 금액이 더 많았겠지만, 그녀의 것만 100%의 것이었습니다. 아마도 우리의 문제는 「100%가 되지 못하는 슬픔」이 아니라 「100%가 아니기를 바라는 미련」일 것입니다.

 

윌리엄 보든(William Borden)이라는 선교사가 있었습니다. 미국의 억만장자의 아들로 태어났으나 모든 재산을 하나님께 드리고 선교사로 떠났습니다. 윌리엄 보든의 삶과 선교는 길지 않았습니다. 젊은 나이에 이집트에서 죽었는데 사후에 발견된 그의 성경책에는 이러한 메모가 있었습니다. 「남김없이, 후퇴없이, 후회없이 (No Reserves, No Retreats, No Regrets)」 그의 삶이 짧아서 아쉽지만, 그는 100%의 헌신자였던 것 같습니다. 하나님이 기다리시는 것은 100% 헌신된 한 사람입니다. 선교는 선교사가 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고, 선교사가 해야 하는 일은 100% 순종하는 것입니다. 「순종」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삶과 선교의 현장에서 여전히 치열한 숙제로 남아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