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T

마가복음 11:11-19

11:11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이르러 성전에 들어가사 모든 것을 둘러 보시고 때가 이미 저물매 열두 제자를 데리시고 베다니에 나가시니라

11:12 이튿날 그들이 베다니에서 나왔을 때에 예수께서 시장하신지라

11:13 멀리서 잎사귀 있는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혹 그 나무에 무엇이 있을까 하여 가셨더니 가서 보신즉 잎사귀 외에 아무 것도 없더라 이는 무화과의 때가 아님이라

11:14 예수께서 나무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이제부터 영원토록 사람이 네게서 열매를 따 먹지 못하리라 하시니 제자들이 이를 듣더라

11:15 그들이 예루살렘에 들어가니라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서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자들을 내쫓으시며 돈 바꾸는 자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자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시며

11:16 아무나 물건을 가지고 성전 안으로 지나다님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11:17 이에 가르쳐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칭함을 받으리라고 하지 아니하였느냐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도다 하시매

11:18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듣고 예수를 어떻게 죽일까 하고 꾀하니 이는 무리가 다 그의 교훈을 놀랍게 여기므로 그를 두려워함일러라

11:19 그리고 날이 저물매 그들이 성 밖으로 나가더라

 성경은 수많은 비유적 표현을 사용하여 우리에게 생동감있게 다가옵니다. 이러한 비유는 특히 우리가 이해하기 어려운, 그리고 당시 백성들이 이해하기 어려웠을 미래에 대한 이야기, 예언들에 많이 나타납니다.

 

 오늘 본문 역시 예언서에서 사용된 비유적 표현들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바로 열매가 없는 무화과나무와 성전입니다.

 

 열매가 없는 무화과나무는 예언서에서 이스라엘의 심판을 예언할 때에, 심판 받을 이스라엘을 가리키는 비유로서, 표현으로서 자주 등장합니다. 흔히 예수님이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셨다고 알려져있는 이 사건은, 하나님의 말씀을 성취하기 위한 예수님의 사역이었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무화과나무는 어찌보면 참 불쌍합니다. 나무가 열매를 맺지 않은 것은 나무가 자신의 본분을 다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닙니다. 반대로 그 본분에 충실하게, 자신이 지어진대로 하나님의 정하신 때에 열매를 맺지 않고 있었을 뿐입니다. 하지만 이 때는, 구약의 예언으로부터 본다면, 하나님의 심판의 때가 다가왔음을 알리는 것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보기에 예수님께 열매를 드리지 못하여 저주받은 것과 같이 보이는 무화과 나무는, 어쩌면 우리가 불쌍히 여길 존재가 아니라,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말씀의 성취에 헌신한, 다가온 하나님의 때를 알린 귀한 존재였을지도 모릅니다.

 

 다음으로 예수님과 제자들은 성전으로 향합니다. 그 성전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장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돈을 바꾸는 자들, 비둘기 파는 자들, 그들이 하는 일은 분명 성전에 필요한 일입니다. 하지만, 그들의 방향성은 하나님을 향하고 있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여러 사정으로 제물을 성전까지 가지고 오지 못하는 사람들, 로마의 화폐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 나아가기 위해서는 비둘기를 파는 사람들도, 돈을 바꿔주는 사람들도 분명 필요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그 곳에서 자신들을 위한 부당한 이익을 챙기고 있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예수님도 그 사실을 아셨기에, 단순히 장사꾼이 아닌 강도들이라고 표현하셨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들이 그 곳에서 장사를 하기 위해서는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의 허가가 필요했습니다. 그들 역시 한통속이었던 것입니다.

 

 구약 성경에서 성전, 그리고 그 이전의 장막은 비유적으로 하나님의 임재를 나타낼 때에 자주 사용됩니다. 그리고 오늘 그 성전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배를 채우고 있었던 것입니다. 단순히 성전에서의 장사정도가 아닌, 그들은 하나님을 이용하여 자신들의 배를 채웠던 것입니다.

 

 이런 자들의 결말 역시 우리는 구약 성경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 앞에 드려지는 제물들로 부당한 이익을 취했던 제사장들의 모습입니다. 그들에게 하나님은 자신들의 배를 채우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습니다. 그들의 제사의 방향성은 하나님이 아닌, 자신들을 향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의 섬김의 방향성은 어디를 향하고 있을까요. 분명 우리의 섬김의 자리가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필요할 자리일지라도, 그 방향이 하나님을 향하고 있지 않다면, 그것은 성전에서 장사를 하는 것과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 일들을 결단하고, 한 해의 방향성을 정해가는 이 때에, 우리의 모든 일들의 방향이 어느 곳을 향하고 있는지 함께 점검하며, 하나님을 향한 올바른 방향성을 가지는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