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6장 16~24
6:16 금식할 때에 너희는 외식하는 자들과 같이 슬픈 기색을 내지 말라 저희는 금식하는 것을 사람에게 보이려고 얼굴을 흉하게 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6:17 너는 금식할 때에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으라
6:18 이는 금식하는 자로 사람에게 보이지 않고 오직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보이게 하려함이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6:19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고 도적질하느니라
6:20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적질도 못하느니라
6:21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6:22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6:23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니 그러므로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두움이 얼마나 하겠느뇨
6:24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예수님은 광야에서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실 때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4:4」 고 하셨습니다.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경제적 가치만이 삶의 전부가 아니라는 말씀이겠지만 뒤집어 말하면 사람에게 떡은 필수적이라는 것의 의미를 이미 포함하고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 사이에 불안과 절망이 있습니다. 경제력이 많다는 것은 좋은 것이겠지만 그것은 한정이 없는 것이어서 더 많을 것을 원하게 되고 그것은 곧 인간을 탐욕과 불안으로 몰아갑니다. 한편 경제력이 부족하다는 것의 병폐는 가난함 그 자체의 불편함보다 인간을 소외하고 절망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강자의 불안은 교만과 폭력으로 드러나고 약자의 절망은 수치과 우울로 드러납니다. 경제는 원래 불안한 것입니다. 가진 자이든지 가지지 못한 자이든지 불완전한 것에 모든 가치를 걸어버린 인간의 삶이 불안할 수밖에 없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입니다. 소비가 행복이라고 규정해 버린 시대에 더 많은 소비를 위해 축적하지 않는 것은 불안한 것이 되고 남보다 소비하지 못하는 것은 우울한 것이 됩니다. 결국 인간은 돈을 소비하는 것이 아니고 경제에 의해 소비되어 버리는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당연한 것처럼 이것에 지배받고 살지만 이것이 정상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아야 합니다.
본문은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19」 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간단하게 정의하기에는 어려운 것이겠지만, 적어도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나라이어야 합니다.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고 네 보물이 있는 곳에 네 마음이 있다고 했습니다. 성도가 하나님의 나라를 추구하고 구현한다는 것은 이기적 동기의 소비와 축적에서 이타적 나눔과 베품으로 이행할 때만 가능한 것입니다. 그것이 오늘 본문에서 말하는 하늘에 쌓아 두는 보물입니다. 그렇지 않은 하나님 나라는 공허한 구호일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