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T

마태 9장 14~26
9:14 그 때에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가로되 우리와 바리새인들은 금식하는데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아니하나이까
9:15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혼인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동안에 슬퍼할 수 있느뇨 그러나 신랑을 빼앗길 날이 이르리니 그 때에는 금식할 것이니라
9:16 생베 조각을 낡은 옷에 붙이는 자가 없나니 이는 기운 것이 그 옷을 당기어 해어짐이 더하게 됨이요
9:17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지 아니하나니 그렇게 하면 부대가 터져 포도주도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됨이라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둘이 다 보전되느니라
9:18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실 때에 한 직원이 와서 절하고 가로되 내 딸이 방장 죽었사 오나 오셔서 그 몸에 손을 얹으소서 그러면 살겠나이다 하니
9:19 예수께서 일어나 따라 가시매 제자들도 가더니
9:20 열 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는 여자가 예수의 뒤로 와서 그 겉옷 가를 만지니
9:21 이는 제 마음에 그 겉옷만 만져도 구원을 받겠다 함이라
9:22 예수께서 돌이켜 그를 보시며 가라사대 딸아 안심하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하시니 여자가 그 시로 구원을 받으니라
9:23 예수께서 그 직원의 집에 가사 피리 부는 자들과 훤화하는 무리를 보시고
9:24 가라사대 물러가라 이 소녀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하시니 저들이 비웃더라
9:25 무리를 내어 보낸 후에 예수께서 들어가사 소녀의 손을 잡으시매 일어나는지라
9:26 그 소문이 그 온 땅에 퍼지더라

 

본문에서 예수님은 한 직원의 죽은 딸을 살려주시고 혈루병 앓고 있던 한 여인을 고쳐주십니다. 누가복음에 의하면 직원이란 유대교의 회당 관리자, 즉 회당장이고 그의 이름은 야이로입니다. 죽은 딸은 열 두 살 난 어린 소녀입니다. 오늘 본몬 마태복음에는 이미 딸이 죽었고 그래서 아버지 야이로가 예수님께 딸을 다시 살려달라고 찾아왔다고 되어 있지만, 누가복음과 마가복음을 읽어보면 야이로가 예수님을 찾아온 시점에 딸은 아직 죽지 않았습니다.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야이로가 예수님을 찾아와서 도와달라고 부탁한 후 예수님이 야이로의 집으로 향해 가는 길에 딸이 죽었다는 전갈을 받습니다. 그러니 예수님을 모시고 가는 야이로의 마음이 얼마나 급했겠습니까?

 

그러나 예수님에게는 제자들과 따르는 군중들이 많아서 이동이 느렸습니다. 게다가 예수님은 야이로의 집으로 가는 길 위에서 또 다른 한 병자를 만납니다. 그래서 시간은 더 지체되었습니다. 이 여인도 이름은 알 수 없습니다. 그저 혈루병 여인이라고 부를 뿐입니다. 한 명은 12살의 소녀이고 또 한 명은 12년을 투병한 중년의 여인입니다. 두 명 다 사연이 슬픕니다. 12살에 죽은 소녀는 너무 어려서 슬프고, 12년을 병으로 고생한 사람은 그 삶이 고통스러워서 슬픕니다. 혈루병은 하혈이 멈추지 않는 부인병입니다.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 병을 부정한 병이라고 생각해서 이 여인을 쫒아내고 차별했습니다.

 

마가복음에 보면 의원에게 오랫동안 치료받았으나 낫지 않고 돈도 다 써버렸다고 했습니다. 여인에게는 건강도 가족도 경제력도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예수님의 옷자락이라도 만지면 나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들어와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졌습니다. 예수님은 그때 멈추어 서서 옷자락을 만진 여인을 찾으셨습니다. 여인은 마치 잘못한 것을 들킨 사람처럼 두려워하면서 예수님 앞으로 나왔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주목하고 있는 가운데 초라하고 부끄럽게 서 있었을 것입니다. 아마도 옷의 여기저기에는 핏자국들이 묻어 있었을 것입니다.

 

야이로는 예수님을 재촉했을 것입니다. 그것을 보는 혈루병 여인은 부끄러웠을 뿐 아니라 서러웠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은 중년이 되었고 병까지 걸려 외롭고 초라해졌지만 자신에게도 아빠라는 존재가 있었지 않겠습니까? 딸을 걱정하는 야이로를 보면서 자신의 아빠를 생각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녀에게 아빠는 없었습니다. 죽어가는 딸을 살려달라고 옆에서 애원하는 아빠 야이로, 그리고 아빠가 없이 늙고 병들어 의지할 곳 없는 혈루병 여인, 그 사이에 서 있던 예수님이 이 여인을 부르십니다. 「딸아 안심하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하시니 여자가 그 시로 구원을 받으니라 22」

 

예수님은 얼마나 사려 깊으신지 모릅니다. 「딸」이라고 불러 주셨습니다. 구원을 얻었다는 말은 고침을 받았다는 말이지만 구원이라는 말보다 딸아! 라고 불러주신 그 호칭이 더 감격스러운 구원의 선언입니다. 몸 안의 병만 아신 것이 아니라 마음의 슬픔도 알고 계셨습니다. 예수님은 그 마음도 함께 구원하여 주신 것입니다. 야이로에게는 꼭 살려야만 하는 꽃 같은 딸이 있었고 예수님에게도 꼭 살리고 위로해야 하는 소외된 딸이었습니다. 그 후 예수님은 야이로의 집으로 가서 이미 죽은 소녀에게 달리다굼 하시고 다시 살리십니다. 그래서 열 두 살 소녀는 죽음에서 구원을 얻었고 살아 돌아온 딸로 인해 아버지는 구원을 얻었고 12년을 고생한 여인은 질병과 고통에서 구원을 얻었습니다. 【딸아 안심하라】예수님의 옷자락을 붙들고 있는 모든 딸들과 아버지들은 안심해도 되겠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25C_dFKhlm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