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 19장 1~12
19:13 때에 사람들이 예수의 안수하고 기도하심을 바라고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오매 제자들이 꾸짖거늘
19:14 예수께서 가라사대 어린 아이들을 용납하고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 천국이 이런 자의 것이니라 하시고
19:15 저희 위에 안수하시고 거기서 떠나시니라
19:16 어떤 사람이 주께 와서 가로되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19:17 예수께서 가라사대 어찌하여 선한 일을 내게 묻느냐 선한이는 오직 한 분이시니라 네가 생명에 들어 가려면 계명들을 지키라
19:18 가로되 어느 계명이오니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거짓증거하지 말라,
19:19 네 부모를 공경하라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니라
19:20 그 청년이 가로되 이 모든 것을 내가 지키었사오니 아직도 무엇이 부족하니이까
19:21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하시니
19:22 그 청년이 재물이 많으므로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가니라
제자들이 어린아이들이 막자 예수님은 제자들을 꾸짖으시고 어린아이들을 맞아 머리 위에 기도하시고 천국은 이런 어린아이들과 같은 사람의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어린아이의 어떤 속성에 대해서 말씀하셨는지는 직접적인 설명은 없습니다. 그리고 부자 청년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어린아이들에게도 욕심은 있습니다. 자신이 탐내는 것을 차지하기 위해 울고 떼쓰고 싸웁니다. 가르치지 않아도 폭력을 쓰고 거짓말을 합니다. 애나 어른이나 표현이 다를 뿐 마음의 상태는 같습니다. 죄를 가지고 있는 것은 똑같습니다. 울고 있는 아이의 마음 안에도 치밀한 계산이 있을 수 있습니다. 물론 어른에 비교했을 때 어린아이는 순수하겠지만 어린이와 어른을 순수와 비순수로 나누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결과적으로 어린아이는 천국을 소유했고 부자 청년은 그가 원했던 영생을 얻지 못했습니다. 이 대조적인 결론과 마태 19장, 마가10장, 그리고 누가 18장이 동일하게 이 순서를 그대로 기록하고 있는 것을 확인하고 나니 이 비교를 통해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어린아이라는 것이 무엇인가를 유추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이들은 버릇이 없었을 수도 있고 지저분하고 시끄러웠을 것입니다. 제자들은 아이들이 가까이 오지 못하게 막았지만, 아이들은 그 거절에도 불구하고 기어이 예수님 품에 안겨서 축복 기도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천국에 합당한 사람이라는 인정을 받았습니다.
반면에 부자 청년은 마치 죄가 없는 사람처럼 높은 도덕성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예수님도 그것 자체는 긍정적으로 인정하셨습니다. 제자들이 막아서지도 않았습니다. 부자였기에 오히려 길을 내주었지만, 결론적으로 그는 스스로 예수님에게로 가는 길을 포기했습니다. 예수님이 가진 재물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 예수님을 따르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려는 모든 사람에게 재산을 처분하여 사회에 기부하라는 말씀은 아닐 겁니다. 다만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에 있어서 그 우선순위만큼은 바뀔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되 재물이 우선이 된다는 것은 예수님을 믿지 않고 재물을 믿는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많은 돈이 필요한 우리로서는 아쉬운 일이지만 우선순위라는 것은 타협이나 절충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거기서 우리의 순수함이라는 것은 다 드러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