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그러나 이 사람들은 본래 잡혀 죽기 위하여 난 이성 없는 짐승 같아서 그 알지 못한 것을 훼방하고 저희 멸망 가운데서 멸망을 당하며
13 불의의 값으로 불의를 당하며 낮에 연락을 기쁘게 여기는 자들이니 점과 흠이라 너희와 함께 연회할 때에 저희 간사한 가운데 연락하며
14 음심이 가득한 눈을 가지고 범죄하기를 쉬지 아니하고 굳세지 못한 영혼들을 유혹하며 탐욕에 연단된 마음을 가진 자들이니 저주의 자식이라
15 저희가 바른 길을 떠나 미혹하여 브올의 아들 발람의 길을 좇는도다 그는 불의의 삯을 사랑하다가
16 자기의 불법을 인하여 책망을 받되 말 못하는 나귀가 사람의 소리로 말하여 이 선지자의 미친 것을 금지하였느니라
17 이 사람들은 물 없는 샘이요 광풍에 밀려가는 안개니 저희를 위하여 캄캄한 어두움이 예비되어 있나니
18 저희가 허탄한 자랑의 말을 토하여 미혹한 데 행하는 사람들에게서 겨우 피한 자들을 음란으로써 육체의 정욕 중에서 유혹하여
19 저희에게 자유를 준다 하여도 자기는 멸망의 종들이니 누구든지 진 자는 이긴 자의 종이 됨이니라
20 만일 저희가 우리 주 되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앎으로 세상의 더러움을 피한 후에 다시 그 중에 얽매이고 지면 그 나중 형편이 처음보다 더 심하리니
21 의의 도를 안 후에 받은 거룩한 명령을 저버리는 것보다 알지 못하는 것이 도리어 저희에게 나으니라
22 참 속담에 이르기를 개가 그 토하였던 것에 돌아가고 돼지가 씻었다가 더러운 구덩이에 도로 누웠다 하는 말이 저희에게 응하였도다
베드로는 거짓 교사들을 이성 없는 짐승으로 비판히고 또 브올의 아들 발람에 비유했습니다. 발람은 하나님으로 시작했다가 거짓선지자로 마친 사람입니다. 영으로 시작하여 육으로 마친 사람입니다. 13 절 이하로 보아 그들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탐욕과 음란을 행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속아 넘어간 사람들을 개가 토한 것을 다시 먹고 돼지가 씻었다가 구덩이에 다시 들어간다는 말로 비판합니다. 베드로의 어조에는 상당한 분노와 단호함이 있습니다. 그것은 복음이 모욕을 당했기 때문입니다.
본능은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 필요한 기본적 요구를 알려주는 알람 같은 것입니다. 그 설정은 설계하고 제작하신 하나님이 하신 것입니다. 동시에 하나님은 그 본능을 통제할 수 있는 이성이라는 기능도 주셨습니다. 그래서 짐승은 본능적인 자기 욕구에 따라 살지만 인간은 이성에 따라 자신을 통제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생기를 불어넣어 영적인 존재로 창조한 인간에게만 이 기능이 있습니다. 그런 이유로 본능은 선한 것이지만 이성을 망각하고 본능대로만 살면 결코 선하게 살 수 없는 것입니다.
인간은 동물과는 달리 자기 통제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자유라는 권리를 누릴 수 있습니다. 폭력성에 의해 인간성이 후퇴하면 자유를 억압당하고 권리가 박탈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한편 자유가 주어져도 자기 통제를 하지 못해서 오히려 인간성이 후퇴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현대가 근대적 질서를 해체하면서 억눌려왔던 인권을 회복하는 기능을 하고 있는가 하면 한편 절대성과 권위를 부정하면서 자기통제가 결여된 감각적 본능을 자유라고 생각하는 경향 또한 현저합니다.
우리가 사는 현대라는 시대는 생각하기를 포기한 시대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근대에 들어서서 자본과 산업이 일어났고 개인과 시민의 지위가 향상되었습니다. 오랜 시간 종교에 묶여있던 세계가 이성과 과학을 통해서 인간을 계몽하고 해방시키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 대신 행복을 가져다 줄 것이라고 믿었던 지식과 문명의 발달이 두 번의 세계대전을 통해 전셰계를 학살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하나님께로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현대가 선택한 것은 그저 오늘 하루를 열심히 그리고 즐겁게 사는 것입니다. 어느 시대보다 학교를 오래 다니지만 어리석음은 더 깊습니다. 시작이나 끝이나 목적이나 이유를 물으면 바보 취급을 당해야 합니다. 생각하면 안 됩니다. 세상을 지배한 자본은 그것을 생각할 시간을 주지도 않습니다. 있는 모습 그대로 감정에 충실하여 지금을 즐기라고 말합니다.
다양성을 인정하는 발언만 현대적인 것같은 착각을 하게 하지만 다양성이란 획일성의 반대말이 아니고 절대성에 속한 말입니다. 하나님 안에서 다양한 것입니다. 하나님 없이 스스로 다양해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자유를 억압하는 것에 대해서는 저향해야 하는 것이 존엄한 자유를 지키는 것이고 하나님이 만드신 질서에 대해서는 그것을 인정하고 지키는 것이 자유를 지켜내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