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립보서 4:1~7
4:1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아 이와 같이 주 안에 서라
4:2 내가 유오디아를 권하고 순두게를 권하노니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
4:3 또 참으로 나와 멍에를 같이한 자 네게 구하노니 복음에 나와 함께 힘쓰던 저 부녀들을 돕고 또한 글레멘드와 그 위에 나의 동역자들을 도우라 그 이름들이 생명책에 있느니라
4:4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4:5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4:6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4:7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바울은 빌립보 성도들을 향해서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이라고 말하면서 「이와 같이 주 안에 서라」고 합니다. 「이와 같이」라는 것은 어제 본문의 권면을 말합니다. 그 권면은 「자신의 배를 위해 살지 않고 천국 시민권자의 자부심으로 복음을 위해 사는 것」입니다.
바울은 그 말을 하면서 마음에 걸리는 사람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내가 유오디아를 권하고 순두게를 권하노니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 2」 유오디아와 순두게가 갈등을 일으키고 대립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바울을 도와서 빌립보 교회를 세웠던 공로자들입니다.
공로가 많은 만큼 애착도 많았을 것입니다. 띠라서 갈등과 대립도 많아집니다. 교회가 내 것이 되면 남이 하는 것은 다 마음에 안 들게 될 테니까요. 그래서 교회에서 분란이 생기고 싸움으로 번집니다. 싸움하는 교회가 화해를 하지 못하는 것은 자기 생각이 하나님 생각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싸우는 것이 사명이 되어 부끄러운 줄 모르고 싸웁니다.
솔로몬의 지혜가 생각납니다. 서로 자신의 아기라고 우기던 두 여성에게 솔로몬이 아기를 둘로 나누어 주어라고 했더니 친모는 아기를 사랑하므로 엄마라는 주장을 포기했습니다. 거기서 사랑의 진위가 가려졌습니다. 평화는 정의보다 관용에 더 가까울 것입니다.「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5」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6」 문장에서 그 결과는 「마음과 생각의 평화」입니다. 구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가 분명해집니다. 걱정하지 말고 믿음으로 구해야 하는 것은「마음과 생각의 평화 7」라는 것입니다.
거슬러 올라가면 그것을 위해서는 「관용의 마음 5」이 필요하고 더 거슬러 올라가면 「항상 기뻐하는 믿음 4」이 필요합니다. 죄 많은 인간이 죄를 가진 인간을 사랑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사랑하지 않더라도 오랫동안 미워하지만 않아도 사랑은 아주 가까운 곳에 와 있을 것입니다. 마음과 생각을 지켜낼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