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7장 51~8장 1
7:51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아 너희가 항상 성령을 거스려 너희 조상과 같이 너희도 하는도다
7:52 너희 조상들은 선지자 중에 누구를 핍박지 아니하였느냐 의인이 오시리라 예고한 자들을 저희가 죽였고 이제 너희는 그 의인을 잡아준 자요 살인한 자가 되나니
7:53 너희가 천사의 전한 율법을 받고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하니라
7:54 저희가 이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저를 향하여 이를 갈거늘
7:55 스데반이 성령이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7:56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한대
7:57 저희가 큰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고 일심으로 그에게 달려들어
7:58 성 밖에 내치고 돌로 칠새 증인들이 옷을 벗어 사울이라 하는 청년의 발앞에 두니라
7:59 저희가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가로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7:60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가로되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
가 어디뇨
7:50 이 모든 것이 다 내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냐 함과 같으니라
8:1 사울이 그의 죽임 당함을 마땅히 여기더라 그 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핍박이 나서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
이른바 신본주의를 주장하는 경우에 그 반대개념으로 인본주의를 배격하지만 성경의 인물을 위인전의 교훈으로 추앙하는 것이야말로 인본주의적 산물입니다. 물론 성경 안에 위대한 사람이 있을 수 있고 교훈적 메시지가 있을 수 있지만 그것이 주제는 아닙니다. 성경에서 사람을 발견할 때는 부끄럽고 하나님을 발견할 때에는 조금씩 믿음이 생겨납니다. 그리고 그것은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면 내가 보이고 나를 알면 하나님을 찾지 않을 수 없습니다.
유대인들은 구약의 선지자들이 자신들의 혙통과 신앙의 조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사실 그들의 조상들은 선지자들을 거절하고 박해하고 죽였던 사람들입니다. 시간이 지나고나면 박해한 사람들이 박해받았던 사람의 영광에 울라타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전통과 자부심을 믿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전통이라는 것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끊임없이 질문하지 않는다면 결국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을 섬기게 될 것입니다. 스데반은 하나님을 믿는다 하면서 하나님의 선지자를 죽인 모순된 비열함을 비판합니다.
신앙의 적은 누구인가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신앙의 적이 스데반이라고 생각하고 스데반을 죽였습니다. 그러나 적은 밖에 있지 않습니다. 불신앙에 있지도 않습니다. 제일 무서운 적은 내 안에 있는 근거없는 전통과 자부심입니다. 그들은 성경에서 하나님을 찾지 못하고 사람을 찾으려고 합니다. 자신에게서 비참함을 찾지 못하고 자부심을 찾습니다. 바울과 유대인들은 종교적 자부심의 우상을 쫓아 스데반을 죽였습니다. 왜곡된 믿음이라는 것은 얼마나 무서운 것입니까. 하나님 앞에서 솔직할 수만 있어도 살 수 있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