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T

사도행전 9장 10~22
9:10 그 때에 다메섹에 아나니아라 하는 제자가 있더니 주께서 환상 중에 불러 가라사대 아나니아야 하시거늘 대답하되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
9:11 주께서 가라사대 일어나 직가라 하는 거리로 가서 유다 집에서 다소 사람 사울이라 하는 자를 찾으라 저가 기도하는 중이다
9:12 저가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들어와서 자기에게 안수하여 다시 보게 하는 것을 보았느니라 하시거늘
9:13 아나니아가 대답하되 주여 이 사람에 대하여 내가 여러 사람에게 듣사온즉 그가 예루살렘에서 주의 성도에게 적지 않은 해를 끼쳤다 하더니
9:14 여기서도 주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를 결박할 권세를 대제사장들에게 받았나이다 하거늘
9:15 주께서 가라사대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9:16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해를 얼마나 받아야 할 것을 내가 그에게 보이리라 하시니
9:17 아나니아가 떠나 그 집에 들어가서 그에게 안수하여 가로되 형제 사울아 주 곧 네가 오는 길에서 나타나시던 예수께서 나를 보내어 너로 다시 보게 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신다 하니
9:18 즉시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어져 다시 보게 된지라 일어나 세례를 받고
9:19 음식을 먹으매 강건하여지니라 사울이 다메섹에 있는 제자들과 함께 며칠 있을새
9:20 즉시로 각 회당에서 예수의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하니
9:21 듣는 사람이 다 놀라 말하되 이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이 이름 부르는 사람을 잔해 하던 자가 아니냐 여기 온 것도 저희를 결박하여 대제사장들에게 끌어 가고자 함이 아니냐 하더라
9:22 사울은 힘을 더 얻어 예수를 그리스도라 증명하여 다메섹에 사는 유대인들을 굴복시키니라

 

바울은 실명하여 보지 못하고 식음을 전폐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에게 바울이라는 박해자는 여전히 두려운 존재입니다. 아직 바울의 회심의 진위를 알 수 없는 상태에서 바울을 찾아가는 것은 모험입니다. 그런데 다메섹에 있던 아나니아라고 하는 교회 지도자가 바울을 찾아가 회복시키고 세례를 줍니다. 그것은 아나니아가 하나님에게 받은 미션이었습니다. 순종하기 위해서는 항상 용기가 필요합니다.

 

오늘 본문에는 아나니아의 미션이 나오지만 바울의 미션도 함께 나옵니다. 아나니아의 미션도 두려운 것이었지만 바울의 미션도 엄숙하고 두렵습니다. 「주께서 가라사대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해를 얼마나 받아야 할 것을 내가 그에게 보이리라 하시니 9:15,16」 아나니아가 미션에 순종하기 위해서는 두려운 바울에게 가야만했고, 바울이 미션에 순종하기 위해서는 히브리 세계와 로마 세계에서 거친 협공을 받아야만 했습니다.

 

바울은 많은 교회를 세웠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세운 교회들은 지금 다 사라지고 없습니다. 시대의 교회는 시대와 함께 사라집니다. 그렇다고 허무한 것은 아닙니다. 바울이 남긴 것과 아나니아가 남긴 것은 같은 것입니다. 복음을 가진 사명자입니다. 아나니아는 다메섹 디아스포라 교회 지도자로, 바울은 지중해 세계 개척 선교사로 살았지만 그들의 미션은 동일하게 복음의 사명을 가진 사람을 세우는 일이었습니다. 건물과 조직은 시간이 지나면 무너지고 사라질 것입니다. 교회를 세운다는 말은 사람을 세운다는 말입니다. 그 사람이 다음 시대의 사명을 지고 갈 것입니다. 내 사명에도 그 사명을 만나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