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T

사사기 2장 1~10
2:1 여호와의 사자가 길갈에서부터 보김에 이르러 가로되 내가 너희로 애굽에서 나오게 하고 인도하여 너희 열조에게 맹세한 땅으로 이끌어 왔으며 또 내가 이르기를 내가 너희에게 세운 언약을 영원히 어기지 아니하리니
2:2 너희는 이 땅 거민과 언약을 세우지 말며 그들의 단을 헐라 하였거늘 너희가 내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였도다 그리함은 어찜이뇨
2:3 그러므로 내가 또 말하기를 내가 그들을 너희 앞에서 쫓아내지 아니하리니 그들이 너희 옆구리에 가시가 될 것이며 그들의 신들이 너희에게 올무가 되리라 하였노라
2:4 여호와의 사자가 이스라엘 모든 자손에게 이 말씀을 이르매 백성이 소리를 높여 운지라
2:5 그러므로 그곳을 이름하여 보김이라 하니라 무리가 거기서 여호와께 제사를 드렸더라
2:6 전에 여호수아가 백성을 보내매 이스라엘 자손이 각기 그 기업으로 가서 땅을 차지하였고
2:7 백성이 여호수아의 사는 날 동안과 여호수아 뒤에 생존한 장로들 곧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모든 큰 일을 본 자의 사는 날 동안에 여호아를 섬겼더라
2:8 여호아의 종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일백 십세에 죽으매
2:9 무리가 그의 기업의 경내 에브라임 산지 가아스산 북 딤낫 헤레스에 장사하였고
2:10 그 세대 사람도 다 그 열조에게로 돌아갔고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여호아를 알지 못하며 여호아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도 알지 못하였더라

 

길갈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마른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땅에 들어올 때 요단강 바닥에서 주운 돌 12개로 기념비를 세웠던 곳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그 약속을 지키겠다는 의지였습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그 길갈에서부터 보김에 이르러 책망합니다. 길갈에서 왔다는 것은 은혜의 기억에서부터 왔다는 말입니다. 은혜와 약속을 잊어버리고 일탈하기 시작한 백성에 대한 경고인 것입니다.

 

길갈에서 보김까지의 시간적 여정은 그리 길지 않습니다. 그러나 많은 일들이 일어났습니댜. 정복이 시작되었고 승리했습니다. 아무것도 없던 이스라엘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고 은혜로 요단강을 건너왔지만 이제는 제법 본전이 생겼습니다. 토지를 활용할 방법을 생각해야 했고 노예를 부릴 생각을 해야 했습니다.

 

이스라엘은 농경의 경험이 없었지만 가나안 입성 이후 만나는 그쳤고 이제 가나안에서 농경을 시작해야 했습니다. 농사짓는 것은 유경험자의 조언과 지도가 없이는 어려운 일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가나안을 백지화하라고 주신 전투력으로 가나안과 협상하여 죽이지 않는 대신 자신들을 위해 일하게 한 것입니다.

 

2절에서 말씀한 청종치 않았다는 것은 말씀이 있는데 듣지 않았다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삶의 기준으로 삼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알고는 있으나 그것을 기준 삼고 살지 않은 것입니다. 가나안이라는 신도시는 급진적으로 변화하고 있었고 이스라엘은 그 안에서 합리적 수단을 찾아가다가 하나님의 약속이라는 원칙에서 멀어졌습니다.

 

그러나 소망은 4절에 있습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이스라엘 모든 자손에게 이 말씀을 이르매 백성이 소리를 높여 운지라 4」 잠시 망각하고 착각하고 방황하다가도 귀가 열려있으면 돌아올 수 있습니다. 우리의 믿음의 의지는 완전하지 않습니다. 멈추어서 서서 생각하고 확인해야 합니다. 말씀을 들을 수 있는 은혜와 자신의 현실을 직시할 수 있다면 제자리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92veGSdWz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