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T

시편 56:1~13
56:1 하나님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사람이 나를 삼키려고 종일 치며 압제하나이다
56:2 나의 원수가 종일 나를 삼키려 하며 나를 교만히 치는 자 많사오니
56:3 내가 두려워하는 날에는 주를 의지하리이다
56:4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 말씀을 찬송하올지라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였은즉 두려워 아니하리니 혈육있는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이까
56:5 저희가 종일 내 말을 곡해하며 내게 대한 저희 모든 사상은 사악이라
56:6 저희가 내 생명을 엿보던 것과 같이 또 모여 숨어 내 종적을 살피나이다
56:7 저희가 죄악을 짓고야 피하오리이까 하나님이여 분노하사 뭇 백성을 낮추소서
56:8 나의 유리함을 주께서 계수하셨으니 나의 눈물을 주의 병에 담으소서 이것이 주의 책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나이까
56:9 내가 아뢰는 날에 내 원수가 물러가리니 하나님이 나를 도우심인줄 아나이다
56:10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여 그 말씀을 찬송하며 여호와를 의지하여 그 말씀을 찬송하리이다
56:11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였은즉 두려워 아니하리니 사람이 내게 어찌 하리이까
56:12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서원함이 있사온즉 내가 감사제를 주께 드리리니
56:13 주께서 내 생명을 사망에서 건지셨음이라 주께서 나로 하나님앞 생명의 빛에 다니게 하시려고 실족지 않게 하지 아니하셨나이까

 

연인에게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프러포즈에는 몇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상대를 사랑한다는 고백뿐 아니라, 다른 사람은 사랑하지 않는다는 고백이고, 앞으로도 다른 사람을 사랑하지 않겠다는 다짐입니다. 상대가 누구인지 아는 지식과 경험 없이, 사랑을 지킬 의지도 없이, 다만 일시적인 감정으로 표현한 것이라면 그것을 온전한 사랑의 고백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이해와 책임이 없는 사랑은 거짓입니다. 성도에게 사명이라는 책임이 존재하는 이유도 삼위일체 하나님이 나를 향한 사랑을 지키기 위해서 어떤 책임을 지셨는지를 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에 대해서 알고 있다는 것이고, 다른 것은 믿지 않는다는 고백이고, 앞으로도 다른 것을 믿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입니다. 믿음은 지정의(知・情・意)가 동반되어야 합니다. 지식과 경험으로 사랑과 믿음의 상대에 대해서 알아야 하고, 감정이 동의해야 하고, 의지와 노력도 동반되어야 합니다. 만약 누군가를 사랑하려거든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알아야 하고, 사랑의 감정을 확인해야 하고, 의지적인 결단을 해야 합니다. 지정의의 인격적 반응 없이는 사람을 사랑할 수도, 하나님을 믿을 수도 없을 것입니다.

 

4절과 11절에서는 반복해서 하나님을 의지하였으므로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겠다고 말합니다.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였은즉 두려워 아니하리니 혈육있는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이까 4」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였은즉 두려워 아니하리니 사람이 내게 어찌 하리이까 11」 하나님을 의지했으니 사람이 위협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했고, 하나님을 의지하겠다고 했으니 다른 것에 대해서는 의지하지 않겠다는 다짐이기도 합니다. 다윗이 처한 위기에서나 각자 우리의 처지에서나 하나님을 의지한다는 것의 행동 방식은 도대체 어떤 것입니까?

 

4절과 11절의 문장에는 공통적으로 「말씀」이라는 목적어가 숨어 있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 말씀을 찬송하올지라 4」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여 그 말씀을 찬송하며 여호와를 의지하여 그 말씀을 찬송하리이다 10」 이 문장 뒤에 하나님을 의지한다는 말이 나옵니다. 그러니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한다는 것의 행동 방식은 무방비 상태로 기다린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상황을 읽어내야 하고 시간을 판단해야 하고 행동을 결단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그것을 가르쳐주고 인도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추상적으로 받는 사람은 믿음의 방식도 추상적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놓치지 않고 읽고 듣고 따져보며 현재적 해석을 하는 사람은 자신의 삶의 구체적인 문제를 말씀으로 대응합니다. 간증은 그때부터 생기는 것입니다. 설교를 듣는 방식으로만 하나님의 말씀을 받으려고 한다면 시간이 지나도 자신의 삶에서 간증은 발견할 수 없을 것입니다. 말씀과 나 자신이 개인적으로 교제해야만 합니다.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과 인격적인 교제를 나누는 사람은 말씀으로 인해서 상황과 시기와 행동을 분별하게 합니다. 때로는 이미 내 안에 내재된 말씀이고, 때로는 아침마다 저녁마다 귀를 열고 있는 성도에게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다른 것을 의지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