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T

시편 69:29~36
69:29 오직 나는 가난하고 슬프오니 하나님이여 주의 구원으로 나를 높이소서
69:30 내가 노래로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하며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광대하시다 하리니
69:31 이것이 소 곧 뿔과 굽이 있는 황소를 드림보다 여호와를 더욱 기쁘시게 함이 될 것이라
69:32 온유한 자가 이를 보고 기뻐하나니 하나님을 찾는 너희들아 너희 마음을 소생케 할지어다
69:33 여호와는 궁핍한 자를 들으시며 자기를 인하여 수금된 자를 멸시치 아니하시나니
69:34 천지가 그를 찬송할 것이요 바다와 그 중의 모든 동물도 그리할지로다
시69:35 하나님이 시온을 구원하시고 유다 성읍들을 건설하시리니 무리가 거기 거하여 소유를 삼으리로다
69:36 그 종들의 후손이 또한 이를 상속하고 그 이름을 사랑하는 자가 그 중에 거하리로다

시인은 32절에서 「너희 마음을 소생케 할지어다」고 말합니다. 마음을 되살린다는 것은 마음이 죽어있다는 말일 텐데 마음이 죽어있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요? 어느 나라 말이든 마음이라는 것은 깊은 곳에 있는 것이고 진실한 것이 있는 곳입니다. 마음이 사람의 중심입니다. 그것이 오염되거나 퇴색되면 마음이 죽은 것입니다. 사무엘상 16장 7절에서 다윗이 기름 부음을 받을 때 하나님께서 사무엘에게 「여호와는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여호와는 중심을 보시느니라」고 하셨는데 그때 중심이 히브리어로 「לֵב (레브)」이고, 이것이 오늘 본문의 「마음」과 같은 단어입니다. 한국어 번역은 마음을 중심으로 번역했고 일본어는 마음이라고 번역했습니다. 한국어 번역은 마음이 인간의 중심이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이 거해야 마음, 그것마저 없다면 불안정한 인간은 세상을 돌아다니다가 어디에서 안식을 얻을 수 있을까요? 이익을 위해서 양심을 무시하고 자기 마음을 속이는 사람의 영혼이 쉴 곳은 없습니다. 그래서 잠언에서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4:23」고 했습니다.

믿음을 지키겠다는 사람들은 믿음으로 거짓말을 하기도 하고,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전쟁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종교는 있는데 마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마음 없이 하던 일을 계속합니다. 마음 없이 반복합니다. 마음이 없이도 많은 일을 합리적이고 효율적으로 또는 열심으로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마음을 지키는 사람은 그럴 수 없습니다. 마음이 죽어 있는데 하나님께 기도한들 어떤 언어가 나오겠습니까? 먼저 자기 마음에게 마음이 잘 있는지 물어봐야 할 것입니다. 마음이 죽어서는 하나님을 찾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시인은 하나님을 찾으려면 마음부터 찾으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을 찾는 너희들아 너희 마음을 소생케 할지어다 32」 하나님을 찾으려거든 진실부터 찾고 인간부터 찾고 양심부터 찾으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을 빙자하여 인간성을 무시하는 무지한 종교는 반드시 폭력이 됩니다.

자세히 읽어보면 마음을 소생케 하라는 직접적 요구는 바로 찬양입니다. 노래로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양하라는 것입니다. 엄숙한 제의보다 찬송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예배라는 제의 전체보다 찬양이라는 음악적 요소가 더 중요하다는 말이 아닐 것입니다. 마음이 담긴 것을 찾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황소의 제사를 드리더라도 마음이 들어있다면 받으실 것이고, 찬양을 드리더라도 마음이 없으면 공허한 음악일 뿐입니다. 마음을 말하면서 찬양을 추천하는 것은 마음이 감정과 이어져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낙엽이 지고 찬바람이 불어도 마음이 움직이지 않고, 사람들이 늙어가고 죽어가는 것을 보아도 느끼는 것이 없고, 세상이 치열해지는 것을 보면서 덩달아 바빠질 뿐 세상에 대한 분노가 없고, 사람에 대한 자비가 없고, 자신에 대한 겸손이 없다면 어쩌면 우리 마음이 죽어버린 것일지도 모릅니다. 마음이 담겨있는 것은 하나님께로 가서 닿습니다. 우리는 마음이 담긴 것, 그것을 믿음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가을의 감수성이 마음을 되찾고, 그 마음이 믿음의 고백이 되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