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70:1~5
70:1 하나님이여 속히 나를 건지소서 여호와여 속히 나를 도우소서
70:2 내 영혼을 찾는 자로 수치와 무안을 당케 하시며 나의 상함을 기뻐하는 자로 물러가 욕을 받게 하소서
70:3 아하 아하 하는 자로 자기 수치를 인하여 물러가게 하소서
70:4 주를 찾는 모든 자로 주를 인하여 기뻐하고 즐거워하게 하시며 주의 구원을 사모하는 자로 항상 말하기를 하나님은 광대하시다 하게 하소서
70:5 나는 가난하고 궁핍하오니 하나님이여 속히 내게 임하소서 주는 나의 도움이시요 나를 건지시는 자시오니 여호와여 지체치 마소서
인근 고령자시설에서 한 달에 한두 번 주일 오후 설교를 합니다. 생각했던 것보다 어르신들이 말씀을 듣는 집중도는 대단히 높습니다. 성경 이야기의 전후 사정을 모르니 흥미가 떨어질 만도 한데 들으려고 애쓰는 모습이 역력합니다. 목사와 교사는 앞에서 말하는 사람이라서 청중 중에 누가 듣고 있는지 또는 듣지 않는지를 정확하게 알 수 있습니다. 시설에 들어온 어르신들은 열심히 듣습니다. 육체의 약함은 곧 영혼의 강함이 맞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고령자시설은 우리에게 아주 중요한 선교지가 되었습니다. 이번 주에도 출장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집사님들이 그곳에서 일하면서 평소에 전도해 온 결과입니다. 세례받은 어르신은 어린아이처럼 묻는 질문에 대답을 하고 눈물을 흘리며 세례를 받았습니다. 전직은 불상과 불단을 만들어 파는 분이었습니다. 망치로 불상을 때려 부순다고 하여도 예수님을 믿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육체가 쇠약해지고 나니 예수님이 보이는가 봅니다. 부수어야 할 것은 오브제가 아니고 스스로 살아볼 만하다는 인간의 교만한 마음이었습니다. 그것이 약해지니 들리기 시작하고 보이기 시작합니다.
저는 어르신들을 상대로 설교할 때 가장 눈망울이 반짝일 때를 포착합니다. 경험상 어르신들이 가장 집중하는 단어를 알고 있습니다. 수치와 후회입니다. 인생을 살아본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수치와 후회가 있습니다. 말할 수 없는 부끄러움을 숨겨놓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고 후회와 미안함이 없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부끄러움에 대해서 말하면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고 놀란 눈을 하고 구원을 바라는 시선으로 저를 쳐다봅니다. 그러나 설교를 하고 있을 뿐 부끄러움에 대해서는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요한계시록에는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 사람들이 하는 말을 미리 적어놓았습니다. 산과 바위에게 이르되 우리 위에 떨어져 보좌에 앉으신 이의 낯에서와 어린 양의 진노에서 우리를 가리우라 6:16 드러난 죄와 수치를 감당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산이 무너져 바위가 자기 위를 덮치더라도 가려달라고 애원합니다. 주일 설교에서 말했던 이신칭의는 의로운 실력을 획득하는 것이 아니고, 사랑의 이유로 의롭다고 여겨주시는 것입니다. 스스로 부끄럽지 않게 살아낸 것이 아니고, 십자가가 그 수치를 가려주시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후회해도 되지만, 예수 믿지 않은 것을 후회해서는 안 됩니다. 수치는 생각 안에서 지워지지 않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