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T

시편 11편 1~7
11:1 내가 여호와께 피하였거늘 너희가 내 영혼더러 새 같이 네 산으로 도망하라 함은 어찜인고
11:2 악인이 활을 당기고 살을 시위에 먹임이여 마음이 바른 자를 어두운 데서 쏘려 하는도다
11:3 터가 무너지면 의인이 무엇을 할꼬
11:4 여호와께서 그 성전에 계시니 여호와의 보좌는 하늘에 있음이여 그 눈이 인생을 통촉하시고 그 안목이 저희를 감찰하시도다
11:5 여호와는 의인을 감찰하시고 악인과 강포함을 좋아하는 자를 마음에 미워하시도다
11:6 악인에게 그물을 내려 치시리니 불과 유황과 태우는 바람이 저희 잔의 소득이 되리로다
11:7 여호와는 의로우사 의로운 일을 좋아하시나니 정직한 자는 그 얼굴을 뵈오리로다

 

터가 무너지면 의인이 무엇을 할꼬 라는 말의 의미를 생각할 때 우선은 사울에게 쫓기던 시절을 생각할 수 있겠고 또 하나는 자신의 아들 압살롬의 반란으로 쫓기던 시절을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 3절의 터는 기초, 원칙 등이라는 의미입니다. 둘 다 삶의 기반의 무너지던 경험이었던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터가 무너지면 의인이 무엇을 할꼬라는 탄식에서 왠지 사울과 압살롬의 때보다 밧세바의 때가 생각났습니다. 다윗이 스스로 터를 무너뜨리고 낭패를 당했던 사건입니다. 외부의 공격에 의해서 삶의 기반은 위협당할 수 있겠지만 스스로 지킬 것을 지키지 못한 이유로 기반을 상실할 수도 있습니다. 그것이 더 치명적으로 삶을 흔들어 놓습니다. 명분도 정당성도 없기 때문입니다.

 

대적이 없으나 모든 상황이 대적이 되어버리고 변명의 여지도 없고 도움을 요청할 명분도 없습니다. 삶의 기반이 무너져 설 자리가 없고 존재의 가치를 찾지 못합니다. 잠언에서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4:23 고 했습니다. 터를 지킨다는 것은 마음의 원칙, 말씀의 기초를 든든히 하고 그것에서 흔들리지 않아야 하는 삶입니다.

 

그럴 때에라도 피할 곳은 하나님입니다. 다윗은 자신이 많은 환란을 통해서 성장했겠지만 밧세바 사건 이후로도 성장했습니다. 범죄하여 징계받고 있을 때에도 다시 하나님에게로 돌아가는 길을 알았습니다. 다윗의 노래하는 의는 자신의 도덕적 의가 아닙니다. 하나님에게로 돌아가는 인간은 의롭습니다. 넘어지면 세상은 비난하고 거절합니다. 그때라도 하나님은 피난처이시며 말씀을 회복하면 삶의 터는 다시 회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터가 무너져도 하늘은 무너지지 않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Hk4-y_LbdT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