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T

시편 8편 1~9
8:1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주의 영광을 하늘위에 두셨나이다
8:2 주의 대적을 인하여 어린 아이와 젖먹이의 입으로 말미암아 권능을 세우심이여 이는 원수와 보수자로 잠잠케 하려 하심이니이다
8:3 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주의 하늘과 주의 베풀어 두신 달과 별들을 내가 보오니
8:4 사람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권고하시나이까
8:5 저를 천사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이다
8:6 주의 손으로 만드신 것을 다스리게 하시고 만물을 그 발 아래 두셨으니
8:7 곧 모든 우양과 들짐승이며
8:8 공중의 새와 바다의 어족과 해로에 다니는 것이니이다
8:9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8편은 신론과 인간론의 이해에 있어서 중요한 시편입니다. 책에서든 인터넷에서든 8편의 자료에 대해서 찾아보면 끝없이 나올 것입니다. 관심을 가지고 찾아 읽어 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오늘 여기에서는 그 관점에 대해서는 생략하고 다윗의 영성과 감성에 대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괜히 어렵게 말하기 좋아하는 신학적 언어에는 매력이 없지만 다윗의 시의 언어는 부러운 것이기 때문입니다.

 

별이 빛나는 밤하늘을 올려다보신 것은 언제적 일입니까? 땅만 보고 한숨 쉬고 살기도 하고 하늘을 올려다보아도 하늘이 무너질까 봐 걱정하며 삽니다. 그러나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지만 벌판에 드러누워 밤하늘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영광을 발견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다윗은 해지는 벌판에 드러누워 광활한 하늘을 바라보았습니다. 시인이 풀 한 포기와 바람 한 줄의 일상을 읽어내고 그것으로 시를 쓰듯이 믿음은 아무것도 다를 것 없는 일상에서 하나님을 발견해내고 그것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도와주세요라는 기도는 할 수 있지만 일상에서 보고 듣고 느끼는 것으로 하나님을 발견하지 못한다면 하나님은 존재하되 자신의 삶에서는 그저 스쳐 지나가는 존재가 되고 말 것입니다. 깨닫지 못하고 표현하지 못하면 묻힌 채 드러나지 않습니다. 그것이 제일 원통한 일입니다. 인간은 믿는 것을 표현하지 않을 수 없어서 동굴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종교와 예술은 태생이 같습니다. 생각하지 않고 고민하지 않고 돌아보지 않고 묵상하지 않으면서 하나님을 발견하고 그것을 표현할 수는 없습니다. 모든 인간은 지적이기 전에 그리고 이성적이고 합리적이기 전에 모두 예술적입니다.

 

간증이란 하나님이 하신 특별한 사건의 결론이 아니라 일상에서 하나님을 발견하고 그것을 표현하는 사람의 것입니다. 누군가의 말과 글을 전자레인지에 돌려먹는 인스턴트 영성으로는 하나님의 깊이를 찾아갈 수 없습니다. 유튜브에 하나님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 마십시오. 이미 내 안에 하나님이 있고 그것을 끄집어내는 사람만 간증을 소유하게 될 것입니다.

 

확신하건대 생각하고 표현하는 신앙 공동체를 이룰 수만 있다면 -그 방법에 대해서는 아직 잘 알지 못하겠지만-하나님에 대한 헌신은 끊이지 않을 것입니다. 믿음의 글쓰기를 하십시오. 그것은 글을 쓰는 일을 하는 사람만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자신의 언어로 표현하지 않으면 결국 믿음의 근거를 찾지 못할 것입니다. 8편이 말하는 하나님이 손으로 지으신 모든 것 중에서 하나님은 믿음을 고백하는 다윗의 입을 더욱 사랑하지 않으셨겠습니까?

https://www.youtube.com/watch?v=-2MrNS9VxT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