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T

시편 139장 1-12절
139:1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감찰하시고 아셨나이다
139:2 주께서 나의 앉고 일어섬을 아시며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통족하시오며
139:3 나의 길과 눕는 것을 감찰하시며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139:4 여호와여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니이다
139:5 주께서 나의 전후를 두르시며 내게 안수하셨나이다
139:6 이 지식이 내게 너무 기이하니 높아서 내가 능히 미치지 못하나이다
139:7 내가 주의 신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139:8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음부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니이다
139:9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할지라도
139:10 곧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
139:11 내가 혹시 말하기를 흑암이 정녕 나를 덮고 나를 두른 빛은 밤이 되리라 할지라도
139:12 주에게서는 흑암이 숨기지 못하며 밤이 낮과 같이 비취나니 주에게는 흑암과 빛이 일반이니이다

 


하나님은 무한하신 분입니다. 무한한 하나님만이 지식에 관해서 모든 것을 아실 수 있고 모든 것을 이해하고 모든 것을 파악하실 수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전지성입니다. 하나님의 지식은 완전하고 전지해서 사람이 그 눈을 피해서 도망가거나 숨을 수 있는 곳은 없습니다. 하나님은 무소부재하십니다. 없는 곳이 없고 임재하지 않는 곳이 없습니다.

물론 그것과 비교하여 인간의 지식은 유한하고 부분적이며 불확실합니다. 아무도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인간의 지식과 이해는 오류투성이입니다. 우리는 스스로 우리가 가진 지식의 불완전성을 인정합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이 완전하시고 전지하시다는 것을 믿지 않으려고 합니다. 더욱이 인간은 할 수만 있다면 하나님의 전지하신 능력을 없애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없앨 수 없으니 마음에서 하나님을 없애는것, 하나님이 없다고 믿는 것입니다. 그것으로 조금 마음을 편하게 합니다.

 

산에서 산토끼 새끼를 발견하고 뒤쩣아 간 적이 있는데 다급해진 새끼 토끼가 숨이 가빴는지 멈추어 서더니 풀섶에 머리를 처박았습니다. 자기 눈에 내가 안 보이니 숨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항상 하는 일입니다. 선악과를 따먹은 아담은 하나님에게 보이지 않으려고 숨었습니다. 죄를 지은 모든 인간은 하나님에게 나오지 않으려고 숨습니다.

 

그러나 풀섶에 머리를 처박아 보아도 하나님의 시선에서 숨을 수 있는 곳은 없습니다. 민수기에서 하나님은「너희 죄가 정녕 너희를 찾아낼 줄 알라 민 32:23 」라고 말씀하십니다. 죄가 우리를 찾아내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죄를 간과하거나 알지 못하시고 넘어가는 분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 사실을 아는 시인은 두려워하거나 걱정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위로를 받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전지하심이 어떤 이에게는 불편함과 두려움이겠으나 어떤 이에게는 평안일 것입니다. 하나님은 나의 모든 것을 아시고 나의 가야 할 길까지 아십니다. 그것이 믿음의 평안입니다.

 

하나님이 나의 죄의 구석까지 다 알고 계신다는 전지성은 두려운 것이지만 그것을 인정한 신자는 하나님이 용서하시는 분이라는 사실과 구원의 능력을 가진 분이라는 새로운 지식 안에서 안식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내 죄를 알고 계신다는 것이 두려운 것이 아닙니다. 가장 두려운 것은 하나님의 전지에 대해 알지 못하거나 알려고 하지 않는 우리의 무지입니다.